O '땅에서 넘어진 사람은 땅을 짚고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땅을 의지하지 않고서 일어나려는 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한 마음을 미혹하여 끝없는 번뇌를 일으키는 이는 중생이요, 한마음을 깨달아 끝없는 미묘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는 부처이다. 미혹함과 깨달음은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 한마음에 유래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떠나서 부처를 찾으려는 것도 또한 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젊어서부터 조사의 문에 몸을 던져 선방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부처님과 조사님들이 중생을 위하여 자비를 드리우신 법문을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결국은 우리들로 하여금 모든 반연(攀緣)을 쉬고 마음을 비워 가만히 계합하고 밖으로 치달아 찾지 않게 한 것이었으니, 경전에서 이르신바 '부처의 경계를 알려 하거든 마땅히 그 뜻을 허공과 같이 맑게 하라'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O 염불과 독경과 온갖 수행은 다 사문이 가질 떳떳한 법이니 무엇인들 해로움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 근본을 캐지 않고 차별상에 집착하여 밖으로 찾으면 지혜 있는 사람의 비웃음을 살까 두렵다. 화엄론에 이르기를 '이
일승(一乘)의 가르침은 근본지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일체지승이라 한다. 허공과 같이 넓은 온 누리가 부처의 경계가 되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과 중생의 마음 경계가 서로 섞이는 것이 마치 그림자처럼 겹쳐 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있는 세계니 부처님이 없는 세계니 말하지 않고, 상법이니 말법이니 말하지 않는다. 이 같은 때에 <부처님이 항상 출현하고 정법이 항상 있다>고 한 그것은 요의경(了義經)이요, 다만 이곳은 더러운 세계니 딴 곳은 깨끗한 세계니, 부처가 있는 세계니 부처가 없는 세계니, 상법이니 말법이니 말한 것은 불료의경(不了義經)이다.'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여래는 삿되고 뒤바뀐 소견을 가진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약간의 복덕을 받을 수 있는 경계를 간략히 말씀하셨지만, 실제로 부처님은 출현하심도 없고 입멸하심도 없다. 오직 도를 바로 아는 이라야 그 지혜와 경계가 저절로 합해져 부처님이 출현하셨다느니 입멸하셨다느니 하는 생각을 내지 않고, 다만 선정과 관행의 두 가지 법문으로 마음의 번뇌를 다스린다. 그러므로 생각이 있고 차별상이 있어 나라는 것이 있는 소견으로 도를 찾는다면 끝내 알지 못할 것이다.
O 마땅히 세상의 쾌락은 영원하지 않고 정법은 듣기 어려움을 알아야 한다. 어찌 어영부영 인생을 헛되이 보내겠는가? 이렇게 미루어 생각하면 오랜 과거로부터 온갖 몸과 마음의 괴로움을 헛되이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고, 현재에도 한량없는 핍박이 있으며, 미래에 받을 괴로움도 끝이 없어 버리기도 어렵고 떠나기도 어렵건만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런데 더구나 이 몸과 목숨은 나고 죽음이 덧없어서 찰나도 보장하기 어려움에 있어서랴! 세월은 급하고 빨라서 가만히 늙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마음을 닦지 못하고 죽음의 문에 점점 다가가는구나.
O 번뇌가 없어질 때에는 생사가 끊어지고, 생멸이 사라지면 적조(寂照)가 앞에 나타나 응용함이 무궁하여 인연이 있는 중생을 제도하리니, 그것이 이른바 할 일을 다 마친 사람의 자리에 있어서의 점차없는 가운데의 점차이며, 공용없는 가운데의 공용이 되는 것이다.
O 원효법사가 말하였다. '세상의 어리석은 이들의 관행은 안으로는 마음이 있다고 헤아리면서 온갖 이치를 밖으로 찾는다. 이치 찾기를 더욱 세밀히 하면 할수록 더욱 바깥 차별상만 취하게 되니, 이치를 등지고 더욱 멀어져 마치 하늘과 땅 사이 같으므로 마침내 타락하여 끝없는 생사를 받는다. 지혜로운 이의 관행은 이와 반대로 밖으로 모든 이치를 잊어버리고 안으로는 자기 마음을 찾되 찾는 마음이 지극하니 이치를 몽땅 잊고 취할 바를 모두 잊어 취하는 마음까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지극한 이치가 없는 지극한 이치를 얻어 마침내 물러나지 않아서 머무름이 없는 열반에 머문다.
O 초저녁이나 밤중이나 새벽에 고요히 온갖 반연을 잊고, 오뚝이 단정하게 앉아 밖의 대상을 취하지 않고, 마음을 거두어 안으로 비추어 보되, 먼저 고요함으로써 반연하는 생각을 다스리고, 다음에는 또렷또렷함으로써 혼침을 다스려, 혼침하고 산란함을 고루 제어하되 취하고 버린다는 생각이 없어 마음이 뚜렷하고 확 트여 어둡지 않게 하여 생각 없이 알고,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므로 어떤 경계도 끝내 취하지 않는다. 혹 세상의 인연을 따라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할 일인지 하지 않을 일인지를 모두 관찰하여 온갖 실천할 일을 버리지 않으며, 하는 일이 있더라도 허명을 잃지 않고 맑고 항상 고요히 안정하여야 한다.
O 마명보살은 백 가지의 대승 경전을 간추려 [대승기신론]을 지었는데, 곧바로 내세우기를 '이른바 법이란 중생의 마음이다. 이 마음이 세간과 세간을 벗어난 모든 법을 포섭하였다. 이 마음에 의하여 마하연의 이치를 나타내 보인다."고 하였다. [원각경]에 이르기를 '모든 중생들의 갖가지 허깨비는 모두 부처의 원만히 깨달은 미묘한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니, 마치 헛꽃이 허공에서 생긴 것과 같다.'고 하였다. [원각수증의]에 이르기를 '단박에 깨닫는 법문에는 일정한 자리가 없고 마음 깨끗함 그것이 바로 진실이다'라고 하였고, [대승기신론]에 이르기를 '이른바 깨달음이란 마음 자체가 생각을 여읜 것이니, 생각을 여읜 모양은 허공계와 같아서 두루하지 않은 곳이 없다. 법계가 한 모양이니, 그것이 바로 여래의 평등한 법신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만약 중생이 생각 없음을 관찰할 수 있다면, 곧 부처의 지혜로 나아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사조도신 선사는 '갖가지 삼매와 한량없는 미묘한 법문이 모두 그대의 마음 속에 있다'고 하였다. [만선동귀집]에 이르기를 '부처님이 실제로 오신 것도 아니요, 또한 내 마음이 간 것도 아니지마는 감응하여 통하여 오직 마음이 스스로 나타난 것이다'라고 하였다.
O 중생들이 오가는 곳은 여섯 갈래이다. 귀신은 어두운 데서 시름하는 고뇌에 잠기어 있고, 새와 짐승은 날고 달리는 슬픔을 지녔으며, 아수라는 잔뜩 성내고, 모든 하늘은 한참 즐거워한다. 그러므로 생각을 가다듬어 보리로 나아가는 것은 오직 사람이라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로서도 어찌할 수 없지 않겠는가?
O 그러므로 참된 유풍을 우러러 사모하여 스스로 꺾이지 말고, 계율과 선정과 지혜로써 몸과 마음을 닦아 번뇌를 떨고 또 떨어 물가와 숲속 밑에서 성인의 태를 길러야 한다. 달빛을 보면서 거닐고 물소리를 들으면서 자재하여, 마음대로 놀아 거리낌이 없고 곳과 때를 따라 마치 물결에 띄운 배와 같고 허공을 나는 날렵한 새와 같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몸은 이 우주에 드러났으되 그윽한 마음은 법계에 잠겨, 인연을 따라 감응하여 일정한 틀에 매이지 않으리니, 내가 사모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O 경전에서 "미친 마음을 쉬는 곳이 바로 보리이다. 그러므로 성품의 깨끗하고 미묘하며 밝음은 남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다."고 하였다. 문수게에는 "한 생각의 깨끗한 마음이 바로 도량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갠지스강의 모래처럼 많은 수량의 칠보의 탑을 만드는 공덕보다 휼륭하다. 보배로 된 탑은 결국 부서져 티끌이 되지만. 한 생각의 깨끗한 마음은 정각을 이룬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