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 습득, 풍간의 시
한산시
258
홀로 바위 앞에 고요히 앉았으면
하늘 한복판에 둥근 달이 빛나거라.
만상은 모두 그림자 나타내나
달은 본래부터 비추는 것 없나니
탁 트이어 정신은 절로 맑고
허(虛)를 머금어 그윽하고 묘하여라.
손가락을 의지해 달을 보나니
달은 이 마음의 상징이니라.
1
이제 내 시를 읽는 그대들이여!
모름지기 마음속을 깨끗이 하라.
탐욕은 날을 따라 청렴해지리.
아첨은 때를 쫓아 바르게 되리.
휘몰아 모든 악한 업을 없애고
부처님께 돌아가 진성을 받자.
오늘 이 생에서 부처 몸 이루기를
빨리 서둘러 꾸물대지 말아라.
161
알뜰하여라 이 한산이여
흰구름 항상 스스로 한가롭네
잔나비 울음 도 안에서 즐겨하고
범의 휘파람 인간세계 벗어낫네.
돌을 밟으며 혼자 거닐고
등가지 휘어잡고 외로이 읊조리네.
솔바람은 맑아 솔솔 부는데
새소리는 고운 대로 지저귀나니.
164
세상에 일 많은 사람이 있어(多事人)
모든 학문을 두루 배우네.
그러나 참된 성품 알지 못하면
도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나니
만일 능히 참된 모양 밝게 안다면
구태여 헛된 소견 늘어놓으랴
한 생각 자기 마음 밝게 깨치면
부처의 지견은 이내 열리리.
165
한산에 집 한 채 있어
그 집에는 난간도 벽도 없나니
여섯 문은 좌우로 통해
방 안에서도 푸른 하늘 보이네.
방은 모두 텅비어 쓸쓸한데
동쪽 벽은 무너져 서쪽 벽을 치는구나.
이 가운데 한 물건도 없나니
빌리러 오는 이의 보챔이 없네.
추위가 오면 불을 피워 데우고
주림이 오면 나물 삶아 먹어라.
배우지 못한 저 시골 첨지는
많은 집을 짓고 또 가축도 기르나니
그것은 모두 지옥으로 들어갈 짓
한번 들어가면 언제 끝나리
부디 깊이 또 자세히 생각하라.
잘 생각하면 법을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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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간시
315
내 천태에 온 지
몇만 번 되었는고
내 한 몸 구름이나 물과 같아서
유유히 오고 감에 맡겨두나니,
시름 없이 거닐어 시끄러움 없고
욕심을 떠나 불도를 일으키네.
세상일에 다다라 갈림길 마음
그러기에 중생은 번뇌가 많다.
허겁지겁 허덕이며 바다에 잠기고
이리저리 떠돌아 삼계를 도네.
아까워라. 신령스런 한 물건이여.
영원히 경계 속에 묻혀 있는가?
번개처럼 한번 갑자기 일어나면
나고 죽음은 티끌보다 어지럽네.
먼 세상일에, 오직 한산과 습득이
때를 따라 가끔 찾아오나니
밝은 달 아래 마음 털어 의논하면
탁 트인 허공인 듯 걸림이 없고,
법계를 두루하여 가이없으며
한 법이 곧 만법을 두루하네.
316
본래 한 물(物)이란 물(物)도 없거니
떨쳐버려야 할 티끌도 또한 없네.
만일 이 뜻을 깨달아 안다면
구태여 꼿꼿이 앉을 것 없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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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시
318
아야. 내 세상 사람들 보니
모두들 고기 먹기 좋아하는구나.
고기 접시가 마를 줄 모르건만
언제나 모자란다 불만이구나.
어제는 무슨 재를 지낸다더니
오늘 소 돼지를 마구 잡는다
이 모두 업의 힘이 끄는 것으로서
한갓 하고자 하는 정 만이 아니다.
한 번 베풀어 천당인가 하더니
백 번 저질러 지옥을 만드는구나.
염라 사자가 한번 쫓아 닥치면
온 집안이 목놓아 통곡한다.
타는 불구덩에 거꾸로 들고
끓는 기름솥에 목욕하나니
언제고 거기서 나올 때에는
너 그 옷을 바꿔 입어라.
319
집을 떠나니 맑고 한가로워라.
맑고 한가로움 귀한 것이다.
어떻게 티끌 밖에 사는 사람이
도리어 티끌 속에 들어갈 거냐.
한번 본마음이 어두워지면
한평생 명리의 부림이 되나니.
명리가 내 몸에 이르게 될 때는
얼굴은 이미 초췌하게 되느니라.
하물며 뜻대로 되지 않은 걸
헛되이 한평생 마음을 쓰랴.
가엾다 집을 떠나 일없는 사람(無事人)
아직도 그대들은 웃을 수 없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