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이어 온 마음 수련법 '좌선의' - 혜거 스님 지음" 중에서
- 나는 누구인가? -
사실 부처는 누구에게나 있고, 이 우주 어디에도 있다. 부처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며, 부처가 존재하지 않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부처를 만나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무지라고 하는 어둠에 가려 있기 때문이다.
무지의 상태에 있을 때 사람은 부처가 특정한 모습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하고, 바깥세상에서 사물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존재를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각자 스스로 진리를 발견함으로써 부처라고 하는 '전체'를 깨달아야만 만날 수 있다. 부처는 진리다. 말과 행동 속에서 진리를 실천해갈 때 무지가 사라지고 비로소 부처는 드러난다.
마음의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고 한다. 집중된 마음을 어떤 한 대상에 쏟으면 그 대상과 계합을 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진리에 집중하고 바른 법에 집중해야 한다. 만약 실제하지 않는 가상의 대상에 집중을 쏟는다면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환상이다.
현대인들은 아침에 일어나 잠들 때까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거의 없다. 오직 온종일 밖을 향해 마음이 치닫다가 밤이 되면 지친 육신을 쉬게 하기 위해 자리에 눕는 일과를 되풀이한다. 1분, 1초라도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이 그렇게 쫓기다가 세상을 마감하는 일이 허다하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던지며 잃어버린 자신을 회복하려 하지도 않고, 참자기를 자각하려 하지도 않으면서 바깥 세계의 사물이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한 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는 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자기 자신이 가장 낯선 존재임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비극인 것이다.
자기완성을 얻은 사람은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의 문제에 속박되지 않고 영향을 받지 않는다. 마치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지만 진흙으로 더렵혀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깨달음에 관한 모든 수행은 바로 자신의 내면의 보물을 찾는 데 있다. 달리 말하면 자신이 이미 완전한 존재, 곧 부처라는 것을 깨닫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