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선담
본지풍광 덕산탁발화
노하시원
2021. 6. 15. 19:17
본지풍광 - 1. 德山託鉢(바리때를 들고)
<수시>
(법상에 올라 주장자를 잡고 한참 묵묵한 후에 말씀하셨다.)
이렇고 이러하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해와 달이 캄캄하도다.
이렇지 않고 이렇지 않으니 까마귀 날고 토끼 달리며 가을 국화 누렇도다.
기왓장 부스러기마다 광명이 나고 진금이 문득 빛을 잃으니
누른 머리 부처는 삼천리 밖으로 물러서고
푸른 눈 달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 도리를 알면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거꾸러지며
이 도리를 알지 못하면 삼두육비이니 어떠한가?
붉은 노을은 푸른 바다를 뚫고
눈부신 해는 수미산을 도는도다.
여기에서 정문의 정안을 갖추면 대장부의 일을 마쳤으니 문득 부처와 조사의 전기대용을 보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다시 둘째 번 바가지의 더러운 물을 그대들의 머리 위에 뿌리리라.
◆ 만약 여기에서 바른 안목을 갖춘다면 대장부의 할 일을 다 마친 것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노파심으로 사족 즉 뱀의 발을 덧붙여 보겠습니다.
<본칙>
예부터 조사 가운데 영웅은 임제 스님과 덕산 스님이라고 모두 말하니, 임제 스님과 덕산 스님은 실로 천고에 큰 안목이라 이는 총림의 정론이다. 그 중 덕산 스님 밑에서 두 사람의 제자가 나왔으니 암두스님과 설봉스님이다.
덕산스님이 어느 날 공양이 늦어지자 손수 바리때를 들고 법당에 이르렀다. 공양주이던 설봉스님이 이것을 보고 “이 늙은이가 종도 치지 않고 북도 두드리지 않았는데 바리때는 들고 어디로 가는가?” 하니 덕산 스님은 머리를 푹 숙이고 곧장 방장으로 돌아갔다. 설봉 스님이 이 일을 두고 암두 스님에게 전하니 암두 스님이 “보잘 것 없는 덕산이 말후구도 모르는구나.” 하였다. 덕산 스님이 그 말을 듣고 암두 스님을 불러 묻되, “네가 나를 긍정치 않느냐?”
하니 암두 스님이 은밀히 그 뜻을 말했다. 그 다음 날 덕산 스님이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는데 그 전과 달랐다. 암두 스님이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기쁘다. 늙은이가 말후구를 아는구나. 이 후로는 천하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다만 삼년뿐이로다.”
했는데 과연 삼 년 후에 돌아가셨다.
◆ 덕산스님은 20세에 출가하여 처음에는 경과 율을 공부하였습니다. 처음 서촉에 있으면서 교리연구가 깊었으며 특히 『금강경』에 능통하여 주금강이라고 칭송을 받았습니다. 스님의 속성은 주씨였습니다. 당시 남방에서 교학을 무시하고 오직 ‘견성성불’을 주장하는 선종의 무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분개하여 평생에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금강경 소초』를 짊어지고 떠났습니다. 가다가 점심때가 되어서 배가 고픈데 마침 길가에 한 노파가 떡을 팔고 있었습니다. 덕산스님이 그 노파에게 “점심을 먹으려고 하니 그 떡을 좀 주시오” 하니, 그 노파가 “내 묻는 말에 대답하시면 떡을 드리지만 그렇지 못하면 떡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여 덕산스님이 그러자고 하였다. 노파가 물었다.
“지금 스님의 걸망 속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금강경 소초가 들어 있소”
“금강경에는 ‘과거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말씀이 있는데 스님은 지금 어느 마음에 점심을 하시려고 하십니까?” ‘점심을 먹겠다’고 하는 말을 빌려 이렇게 교묘하게 질문했습니다. 이 돌연한 질문에 덕산스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그렇게도 『금강경』을 거꾸로 외우고 모로 외우고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떡장수 노파의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다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노파에게 물었습니다.
“이 근방에 큰스님이 어디 계십니까?”
“이리로 가면 용담원에 숭신선사가 계십니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곧 용담으로 숭신선사를 찾아갔습니다.
“오래 전부터 용담이라고 말을 들었더니 지금 와서 보니 용도 없고 못도 없구만요” 하고 용담 숭신선사에게 말하니 숭신스님이 말했습니다. “참으로 자네가 용담에 왔구먼.” 그러자 또 주금강은 할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숭신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하루는 밤이 깊도록 숭신스님 방에서 공부하다가 자기 방으로 돌아오려고 방문을 나서니 밖이 너무 어두워서 방 안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숭신스님이 초에 불을 켜서 주고 덕산스님이 받으려고 하자 곧 숭신스님이 촛불을 훅 불어 꺼 버렸습니다. 이때 덕산스님은 활연히 깨쳤습니다. 숭신스님께 절을 올리니 용담스님이 물었습니다.
“너는 어째서 나에게 절을 하느냐?”
“이제부터는 다시 천하 노화상들의 말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그 다음날 덕산스님이 『금강경 소초』를 법당 앞에서 불살라 버리며 말했습니다. “모든 현변을 다하여도 마치 터럭 하나를 허공에 둔 것 같고, 세상의 추기를 다한다 하여도 한 방울 물을 큰 바다에 던진 것 같다.”
그 후 후배들을 제접할 때는 누구든지 보이기만 하면 가서 뭉둥이로 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덕산스님이 법 쓰는 것을 비유하여 ‘비 오듯이 몽둥이로 때린다’고 평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대중방을 뒤져 책이란 책은 모조리 찾아내어 불살라 버리곤 하였습니다. 그 당시 중국의 두 가지 대표적 선풍을 ‘덕산 방, 임제 할’이라고 하는데 임제스님의 할과 덕산스님의 몽둥이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제자로는 설봉 의존스님, 암두 전활스님 등이 있습니다. 그런 덕산스님 회상에서 두 제자가 함께 계실 때였습니다.
한 번은 공양시간이 늦어졌습니다. 하도 때가 늦어지니까 덕산스님이 ‘공양이 왜 이리 늦는가?’ 해서 바리때를 들고 식당으로 나아갔어요. 당시 설봉스님이 반두 즉 지금으로 말하자면 공양주 소임을 살고 있었습니다. 설봉스님이 그 모습을 보고는 “이 늙은이야, 아직 북도 두드리지 않았는데 바리때는 무엇 하러 들고 나오느냐?”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러자 천하의 덕산스님이 아무 말씀도 않고 머리를 푹 숙이고는 방장으로 돌아갔습니다.
설봉스님이 이 일을 암두스님에게 말했습니다. 암두스님이 그 말을 듣고는 “덕산인지 뭔지 조실에 앉아있으면서도 말후구도 모르는구만” 하였습니다. 말후구란 선종 최후의 관문입니다. 그 말이 덕산스님 귀에 전해졌어요. 그래 덕산스님이 암두를 불러 물었습니다.
“네가 나를 긍정치 않느냐?”
그러자 암두스님이 은밀히 덕산스님에게 그 뜻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다음날 덕산스님이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시는데 과연 그 전과는 달랐습니다. 그러자 암두스님이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기쁘다, 늙은이가 참으로 말후구를 알았구나. 이후로는 천하의 누구도 이 늙은이를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삼 년 더는 못할 것이다.” 했는데 과연 삼 년 뒤에 돌아가셨습니다.
<본칙>
이것이 종문의 높고 깊은 법문인 덕산탁발화이다. 이 공안에 네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첫째는 덕산 대조사가 어째서 설봉 스님의 말 한 마디에 머리를 숙이고 방장으로 돌아갔는가. 진실로 대답할 능력이 없었는가. 아니면 또 다른 뜻이 있었을까?
둘째는 덕산 스님이 과연 말후구를 몰랐는가. 말후구도 모르고서 어떻게 대조사가 되었을까?
셋째는 은밀히 그 뜻을 말하였다 하니 무슨 말을 하였을까?
넷째는 덕산 스님이 암두스님의 가르침에 의해 말후구를 알았으며, 또 그 수기를 받았을까? 그러면 암두 스님이 덕산 스님보다 몇 배나 훌륭하였다는 말인가?
◆ 이것이 그 천고에 유명한 종문의 높고도 깊은 법문 덕산탁발화입니다. 어떻게 보면 꼭 어린애들 장난 같지만 삼세제불과 역대 조사의 골수가 이 법문 속에 다 있습니다. 만약 누구든 이 법문 속에서 바로 눈을 뜬다면 천상천하에 임의자재해서 모든 살활과 권실이 자유자재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안에 네 가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덕산대조사가 어째서 설봉스님의 말 한 마디에 머리를 숙이고 방장으로 돌아갔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진실로 대답할 능력이 없었을까요, 아니면 또 다른 뜻이 있었을까요? 천고에 이름난 조사 덕산스님이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치지 않았는데 바리때는 들고 어디 가는가?” 하는 설봉스님의 말 한 마디에 어째서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머리를 푹 숙인 채 방장으로 돌아갔을까요? 실지로 몰라서 그랬다면 덕산스님을 어떻게 천고에 뛰어난 대조사라 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는 ‘덕산스님이 과연 말후구를 몰랐을까, 말후구도 모르고서 어떻게 대조사가 되었을까’하는 의문입니다. 암두스님이 덕산스님을 두고 “말후구도 모른다”고 했으니 과연 그 뜻이 어느 곳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덕산스님이 실지로 대답을 못하고 돌아갔으므로 “말후구도 모른다”고 했는지, 아니면 그 뜻이 다른 곳에 있는지 그것도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은밀히 그 뜻을 말하였다 하니 무슨 말을 하였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비밀히 그 뜻을 말씀드렸다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전해 내려오지 않습니다. 과연 암두스님은 덕산스님에게 무슨 말을 하였을까요?
넷째는 ‘덕산스님이 암두스님의 가르침에 의해 말후구를 알았으며, 또 그 수기를 받았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암두스님이 덕산스님을 비밀히 만난 후 덕산스님의 법문이 예전과 달랐다 했고, 암두스님이 “기쁘다, 늙은이가 말후구를 알았구나. 이젠 천하의 누구도 이 늙은이를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삼 년 뿐이다.”했는데 암두스님의 예견대로 과연 삼 년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럼 암두스님이 덕산스님보다 몇 배나 훌륭하였단 말인가요?
이것이 덕산탁발화의 네 가지 풀기 어려운 문제점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실지에 있어서 화두 공부를 부지런히 해 확철히 깨쳐 정안을 바로 갖추기 전에는 절대로 모르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도 이리도 생각해보고 저리도 생각해볼는지 모르지만 그런 사량복탁으로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자성을 바로 깨치기 전에는 덕산과 암두와 설봉, 세 분 말씀의 근본 뜻은 절대로 모릅니다.
<본칙>
이 공안은 짐독이나 비상과 같아서 이렇거나 저렇거나 상신실명할 것이니, 부질없는 알음알이로 조사의 뜻을 묻어버리지 말라. 사량분별인 유심경계는 고사하고 허통공적한 무심의 깊은 곳에서도 그 참뜻은 절대로 모르는 것이요. 오직 최후의 굳센 관문을 부수어 확철히 크게 깨쳐야만 비로소 옛 사람의 입각처를 알게 될 것이다. 만약 이 공안을 바로 알면 모든 부처님과 조사의 일체 공안을 일시에 다 알게 된다. 그래서 출격대장부가 되어 금강보검을 높이 들고 천하를 횡행하여 죽이고 살리는 것을 자유자재로 할 것이니 어찌 통쾌한 일이 아닌가?
◆ 그 뒤 임제 정맥에 허당 지우선사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스님 법문을 참고로 소개하겠습니다.
<염>
허당 선사에게 어떤 중이 물었다.
“바리때를 들고 방장으로 돌아간 뜻이 무엇입니까?”
“귀하게 사서 천하게 파느니라.”
“말후구도 모른다 함은 또 무슨 뜻입니까?”
“시끄러운 시장 안에서 조용한 망치를 치느니라.”
“은밀히 그 뜻을 말했다 함은 무슨 뜻입니까?”
“귀신이 방아를 찧고 부처는 담장을 넘느니라.”
“그 다음날 전과 다르고 또한 말후구를 알아 기쁘다 함은 무슨 뜻입니까?”
“칼에 맞은 흉터는 없애기 쉬우나 악담은 없애기 어렵느니라.”
◆ 이것이 덕산탁발화에 대한 모범적인 구경의 문답입니다. 그리고 도림선사라고 유명한 스님이 계셨는데, 이 스님에게 또 누군가가 이 문제를 물은 일이 있습니다.
<염>
도림선사에게 어떤 중이 물었다.
“머리를 숙이고 방장으로 돌아간 뜻이 무엇입니까?”
“빠른 번개에 불이 번쩍거리느니라.”
“말후구도 모른다 함은 무슨 뜻입니까?”
“서로 따라 오느니라.”
“어떤 것이 암두의 은밀히 말한 곳입니까?”
“만년 묵은 소나무가 축융봉에 서 있느니라.”
“과연 삼 년 후에 돌아갔으니 참으로 깊은 뜻이 있습니까?”
“옴 마니 다니 훔 바타로다.”
<착어>
이 두 분 큰 스님의 문답이 탁발화의 골수를 관찰하였으니 실로 고금에 듣기 어려운 바라 모름지기 간절히 참구하고 간절히 참구하여야 한다.
◆ 이것 역시 앞의 허당스님 법문과 같이 말후구의 뜻을 바로 전한 소식입니다. 허당과 도림 두 분 큰스님의 문답은 탁발화의 골수를 관철한 것이니, 이는 실로 고금에 듣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모름지기 간절히 참구하고 간절히 참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본칙>
또 설봉 스님이 암자에 살 때에 두 중이 와서 인사하니 설봉 스님이 문을 밀고 나오면서
“이것이 무엇인가?”
하니 그 중들도
“이것이 무엇인가?”
하므로 설봉 스님이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갔다. 그 중이 이 일을 암두스님에게 전하니
암두 스님이 “슬프다. 내가 당초에 설봉에게 말후구를 일러주지 않았음을 후회하나니 만약 그에게 말후구를 일러주었던들 천하 사람들이 설봉을 어떻게 하지 못하였으리라.”
하였다. 그 중이 법문의 뜻을 묻자 암두 스님이 말하였다.
“설봉이 비록 나와 한 가지에서 나기는 했어도 나와 한 가지에서 죽지는 않으니, 말후구를 알고 싶다면 다만 이것이다.”
◆ 또 설봉스님이 암자에 살 때 일이었습니다. 두 스님이 찾아와 인사하자 설봉스님이 문을 나오면서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대뜸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스님들도 따라서 “이것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니까 예전의 덕산스님이 그러했듯 설봉스님이 머리를 푹 숙이고 암자로 돌아갔습니다. 설봉의 명성을 듣고 천리 길을 마다않고 찾아왔는데 찾아온 스님이 보니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방으로 들어가는 설봉스님의 모습을 보곤 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여기고 암두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암두스님이 물었습니다.
“그대는 어디서 오는 길인가?”
“설봉에서 오는 길입니다”
“그래 설봉이 무슨 말을 하더냐?”
그 스님이 있었던 일을 암두스님에게 전하니 암두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하, 내가 설봉에게 말후구를 일러주었던들 천하 그 누구도 설봉을 어떻게 하지 못하였을텐데. 내가 말후구를 일러주지 못했더니 설봉이 그 지경이구나!”
그 말을 들은 그 스님은 ‘암두스님이 설봉스님보다 몇 배나 도가 높은 분이구나’ 생각하고는 ‘여기서 공부해야겠다’ 하고 암두스님 회하에서 여름을 지냈어요. 그런데 아무리 참구해보아도 말후구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암두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스님께서 ‘설봉에게 말후구를 일러주었더라면 설봉이 거침없이 천하를 횡행했을 텐데 말후구를 일러주지 못해 그 지경이 되었다’하셨으니 어떤 것이 말후구입니까?”
“왜 진작 묻지 않았느냐?”
“어찌 감히 물을 수 있었겠습니까? 지난 여름동안 부지런히 정진하며 나름대로 참구해보았지만 그 말후구의 뜻을 도저히 알 수 없어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암두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설봉이 비록 나와 한 가지에서 나기는 했어도 나와 한 가지에서 죽지 않는다. 네가 말후구를 알고 싶으냐? 이것이 말후구니라.”
이 법문에 대해 내 한 마디 하겠습니다.
<착어>
이 법문도 또한 덕산 탁발화와 그 맥이 서로 통하는 것이니 조상이 영험치 못하니 앙화가 그 자손에게 미친다.
◆ 이 법문 또한 덕산탁발화와 그 맥이 서로 통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덕산탁발화의 네 가지 난점을 분명히 깨쳐서 알면 이것 역시 해결되는 것입니다.
<송>
뒤에 운문스님의 직계자손인 설두선사가 송하였다.
말후구를 그대 위해 설하노니
밝음과 어둠이 서로 함께 비치는 때라
한 가지에서 남은 서로 다 알고
한 가지에서 죽지 않음은 모든 것 떨어졌도다.
모두 떨어졌음이여
석가와 달마도 모름지기 잘 살펴야 하리라.
남북동서 두루 다녀와서
깊은 밤 일천 바위에 쌓인 눈을 함께 보노라.
◆ ‘밝음과 어둠이 함께한다’는 말은 유래가 있습니다. 예전에 암두스님의 제자인 나산스님에게 초경스님이 물었습니다.
“암두스님이 늘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하고 또 이렇게 하며, 이렇게 하지 않고 또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나산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쌍으로 밝고 쌍으로 어둡다.”
이 말씀 역시 근본 소식을 깨쳐야 알 수 있지 그렇지 않고는 그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스스로 공부를 해서 확철대오하여 명암쌍쌍한 그 경계를 실지로 답착하면 말후구를 알지 않을래야 알지 않을 수 없고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 것입니다. 설두스님의 이 송은 어느 정도까지는 이 법문의 뜻에 가깝게 송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결어>
대중이여 이들 공안을 총림에서 흔히들 논란하지마는 산승의 견처로 점검해 보니 덕산 삼부자가 말후구는 꿈에도 몰랐고 설두의 사족은 지옥에 떨어지기 화살과 같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말후구인가?
(한참 묵묵한 후에 말씀하셨다.)
물소가 달을 구경하니 문채가 뿔에서 나고
코끼리가 뇌성에 놀라니 꽃이 이빨 사이에 들어간다.
(주장자로 법상을 세 번 치고 내려오시다.)
◆ 대중여러분, 이 말후구 덕산탁발화 암두밀계에 대해 총림에서 논란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이 산승의 견처로 점검해 보니 덕산 삼부자가 말후구는 꿈에도 몰랐고, 설두의 사족은 지옥에 떨어지기 화살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말후구일까요?
물소가 달을 구경하니 문채가 뿔에서 나고
코끼리가 뇌성에 놀라니 꽃이 이빨 사이에 들어간다.
丁未(1967)년 동안거 결제일 해인사 해인총림 궁현당
[무엇이 너의 본래 면목이냐. 1. 德山託鉢. 장경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