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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록 - 2조 혜가대사 제자 항거사가 인가받은 이야기

노하시원 2023. 5. 5. 20:37


그는 숲과 들에 살면서 나무 열매와 풀을 먹고 시냇물로 목을 축였다. 북제 천보 초년에 2조의 교화가 번성한다는 소식을 듣자, 곧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내서 교제를 열었다.

"그림자는 형상을 말미암아서 일어나고 메아리는 소리를 따라 생겨나는데, 그림자를 희롱하여 형상을 수고롭게 하는 것은 형상이 그림자의 근본임을 모르기 때문이요, 소리를 내면서 메아리를 그치려 하는 것은 소리가 메아리의 뿌리임을 모르기 때문이니, 번뇌를 없애서 열반에 나아가려는 것은 형상을 없애고 그림자를 찾는 것과 같고, 중생을 여의고 불과를 구하려는  것은 소리를 내지 않고 메아리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알아야 하니, 미혹함과 깨달음이 한 길이고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이 다르지 않습니다. 이름이 없는데 이름을 짓는 것이니, 그 이름으로 인하여 시비가 생기고, 이치가 없는데 이치를 짓는 것이니, 그 이치로 인하여 논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환화는 참되지 않거늘 누가 옳고 누가 그르며, 허망은 실답지 않거늘 무엇이 없고 무엇이 있겠습니까? 얻어도 얻은 바가 없고 잃어도 잃은 바가 없음을 알고자 하나, 나아가 뵈올 겨를이 없어서 겨우 이렇게 글을 올리니, 부디 회답해 주소서."

2조 대사는 필생에게 분부하여 이렇게 답장을 썼다.
"보내온 글의 뜻을 자세히 살피니 모두가 실다워서 참되고 그윽한 이치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본래 마니주를 잘못 알아 기와나 자갈이라고 하였으나, 활연하게 자각하면 바로 참다운 구슬이다. 무명과 지혜가 평등해서 차이가 없으니, 만법도 모두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상대적인 견해를 지닌 무리를 가엾이 여겨서, 부르는 말을 쓰게 하여 이 글을 짓나니, 몸과 부처가 다르지 않음을 관찰하면, 어찌 다시 남음 없는 열반을 찾겠는가?"
거사는 2조의 게송을 받아서 절을 한 뒤에 펴 보고, 2조의 인가를 은밀히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