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선담

기둥을 치는 이의 뜻은 대들보를 울리는 데 있다 - 정맥선원 농선대원문재현선사 법문

노하시원 2023. 7. 5. 07:58

농선대원선사 법어 -
기둥을 치는 이의 뜻은 대들보를 울리는 데 있다.

(법좌에 올라 주장자로 법상을 세 번 치고)

서산에 해 지는데 동쪽에 달 솟는다
하늘과 땅 삼라만상 몸과 목숨 잃었네
억겁의 외로운 객 옛 고향에 돌아와
왕가의 모든 권세 스스로 응해 쓰네

기둥을 치는 이의 뜻은 대들보를 울리는 데 있고, 선사님들이 법문하는 뜻은 사람마다 그 본연(本然)의 성품을 보아 도리를 깨닫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사님들의 말이나 듣고 동작이나 보는 데 그친다면, 이는 손가락 끝에서 달을 찾는 것과 같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늘의 달을 보려면 가리키는 손가락을 여의어야 하는 것처럼, 선사님들이 동(東)을 가리킬 때 서(西)를 그리는 도리를 바로 알아차려야만 우리 본연의 성품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스승이신 전강(田岡)선사께서는 당시 혜봉(慧峯)대선사, 한암(漢巖)대선사, 용성(龍城)대선사, 혜월(慧月)대선사, 만공(滿空)대선사 등 오대선지식의 인가를 한 몸에 받으셨습니다. 오늘은 전강 선사와 이 오대선지식 간에 오고 간 밝고 명쾌한 문답들로 법문을 해보겠습니다.

전강 선사께서 26세 때, 금강산 지장암에 계신 방한암 선사를 찾아뵈었습니다. 그 때 한암 선사께서 물으셨습니다.
“육조(六祖)스님께서는 ‘본래 한 물건도 없다.’라고 이르셨지만, 나는 본래 한 물건도 없다 할지라도 인가(印可)하지 못하겠으니, 자네는 어떻게 인가 받겠는가?”
전강 선사께서는 손뼉을 세 번 치고 문득 나와버리셨다고 합니다.

전강 선사 28세 때는 부산 선암사에 계시는 혜월 선사를 찾아 뵈었습니다. 그 때 혜월 선사께서 물으셨습니다.
“공적의 영지를 이르게.”
“볼래야 볼 수 없고 보지 않을래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지의 공적을 이르게.”
“보지 않을래야 보지 않을 수 없고 볼래야 볼 수 없습니다.”
혜월 선사께서 또다시 물으셨습니다.
“공적영지의 등지를 이르게.”
전강 선사께서 답하셨습니다.
“서산에 해 지는데 동쪽에 달 솟습니다.”

전강 선사께서 29세 되던 때에 마곡사 아래 구암리에 계신 혜봉 선사를 찾아뵙고 물으셨습니다.
“조주(趙州)선사 무자(無字)의 뜻은 천하 선지식들이 반도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혜봉 선사님께서 무자의 뜻을 반만 일러주십시오.”
“무(無)!”
“그것이 어찌 반이 되겠습니까?”
“그러면 전강 자네가 한번 일러 보게. 어떻게 일러야 반이 되겠는가?”
“무!”
혜봉 선사께서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물으셨습니다.
“‘작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어서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은 참 가난이라 송곳마저 없도다.’라는 법문이 있는데, 이 법문에 대해서 옛 분이 점검하기를 ‘그것은 여래선밖에 안된다. 조사선을 일러라.’라고 하였으니, 어떤 것이 조사선인가?”
전강 선사께서 답하셨습니다.
“마름모 뿔은 뾰족하고 뾰족하여 타(他)와 같지는 않습니다.”

전강 선사께서 서울 대각사 백용성 선사를 찾아 뵙고 나눈 문답입니다.
용성 선사께서 물으셨습니다.
“어떤 것이 제일구인가?”
전강 선사께서 높은 음성으로 답하셨습니다.
“예?”
용성 선사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어떤 것이 제일구인가?”
전강 선사께서는 손뼉을 치며 크게 웃으셨습니다.
용성 선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제일구입니까?”
“영신아!”
“예!”
“제일구니라.”
이에 전강 선사께서 또 손뼉을 치며 크게 웃으셨습니다.    

용성 선사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자네가 전신을 했는가?”
“그러면 제게 전신구를 물어보십시오.”
“어떤 것이 전신구인가?”
전강 선사께서 답하셨습니다.
“떨어지는 안개는 따오기 나는 모습 같고, 가을 물은 하늘 빛 같습니다.”

그 후 백용성 선사께서는 위의 법 문답에 대하여 “내가 분명히 영신에게 속았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전하여 들으신 만공 선사께서는 속은 줄 아니 과연 용성 선사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전강 선사께서는 이렇게 용성 선사로부터도 인증을 받으셨으니, 용성 선사의 법맥을 이으셨다면 부처님의 75대 법손이 됩니다. 그러나 만공 선사의 법맥을 이으셨기에 77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근대 선종의 중흥조이신 만공 선사와 용성 선사께서 나누신 법담 중에 다음과 같은 문답이 있습니다.  
용성 선사께서 만공 선사께 말씀하셨습니다.
“말이나 침묵, 움직임이나 고요함을 떠나 일러보시오.”
만공 선사께서는 입도 열지 않은 채 양구를 하셨습니다. 잠시 후 용성 선사께서 물으셨습니다.
“지금 양구를 하고 계신가?”
만공 선사께서 답하셨습니다.
“아니오.”
이같은 두 분 선사의 법담 얘기를 들은 전강 선사께서는 만공 선사를 찾아뵙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큰스님께서 서로 멱살을 잡고 흙탕물에 들어간 격입니다.”
그러자 만공 선사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럼,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용성 선사님께서 묻던 내용을 다시 한 번 저에게 물어보아 주십시오.”
만공 선사께서 예를 갖추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이나 침묵, 움직임이나 고요함을 떠나 일러보아라.”
전강 선사께서는 서슴치 않고 답하셨습니다.
“말이나 침묵, 움직임이나 고요함을 떠나 무엇을 이르라는 말입니까?”
“옳다, 옳다.”
만공 선사께서는 이렇게 크게 긍정하셨다고 합니다.

본연님 여러분!

만공 선사와 용성 선사께서 나눈 법담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기에 멱살을 잡고 흙탕 속에 들어간 격이 되었다는 것입니까? 한 마디씩 일러 보십시오.
아무도 이르시는 분이 없으니,  이 사람이 두 큰스님 법문을 감히 평하겠습니다.

용성 선사께서 “지금 양구를 하고 계신가?”라고 하신 것에 대해서 이르겠습니다.
살피지 못한 말씀이다.

만공 선사께서 “아니오.”라고 하신 것에 대해서 이르겠습니다.
다하지 못한 말씀이다.

본연님 여러분, “살피지 못한 말씀이다.”와 “다하지 못한 말씀이다.”라고 한 이 평에 명확히 계합된다면 과거 칠불(七佛)과 일흔일곱 조사께서 빙그레 미소로써 긍정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전강 선사께서 당시 오대선지식과 나눈 문답은 한결같이 불법의 극치를 드러낸 통쾌한 것이건만, 오히려 전강 선사를 비방하고 따르지 않는 무리들을 볼 때 참으로 서글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열반하신 지금까지도 그러한 무리가 있으니 오직 불쌍할 뿐입니다.

본연님 여러분!

어떻게 해야 이런 밝은 스승을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깨닫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바로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내가 나를 몰라 알고 싶은 간절한 이 생각으로 마치 삼대독자 외아들을 잃은 과부가 자식 생각하듯, 자손만대에 씻을 수 없는 누명을 써서 그 억울함이 마음 가득하여 잊으려해도 잊을 수 없듯 참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간절히 지어나가노라면 의단(疑端)이 삼천대천세계와 나까지 삼켜버려 모든 경계가 씻은 듯 없는 지경에 이르르게 됩니다. 그러면 어느 한 때에 홀연히 털끝만치도 움직이지 않은 채, 그 어느 것도 취하고 버림없이 부처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법문을 마칩니다.

(죽비를 세 번 치고 법좌에서 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