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할'은, 왜 사후세계를 궁금해 하지 않느냐, 왜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 하지 않느냐고 시작한 후, 스승 스님이 깨달음에 관하여 묻는 제자 스님를 데리고 1박2일 여행을 하면서 깨달음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이야기다. 5교시로 구성이 되어 있고 각 교시마다 성경과 독경이 번갈아 나온다. 불교의 깨달음과 예수의 가르침인 신약성경의 말씀이 근본에서는 같다는 취지다. 스승스님이 제자스님에게 하시는 말씀들 중에 깨달음에 대하여 널리 알려진 공안화두가 등장한다. 2014년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꽉 막혀도 참 재미있었다. 2017년 다시 보니 또 참 재미있다. 영화 '할'에 나오는 공안화두는 구지선사의 손가락화두, 남전스님과 조주스님의 고양이화두가 있다.
구지선사의 손가락 이야기는 경봉큰스님과 숭산큰스님의 법문에도 나온다. 부처님의 경전에 관하여는 모르는 것이 없다는 구지선사가 어느날 앉아 있었는데 키가 큰 비구니 실제스님이 갓을 쓰고 와서 갓도 벗지 않고 인사도 하지 않고 구지선사 주위를 빙빙 돈다. 구지선사가 불편하여 왜 그러는지 물어보니 실제스님이 "당신이 부처님의 말씀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는 그 구지스님이요? 내 부처님의 말씀은 됐고 어디 당신의 말이나 한 번 들어봅시다."라고 한다. 구지선사 자신의 말을 해보라는 실제스님의 말에 그만 구지선사가 말문이 콱 막혀서 그 길로 강학 제자들을 모두 해산시키고 방에 틀어앉아 참선을 하였다.(또는 그냥 죽어버리려고 하는데 공청으로 "내일 육신보살이 와서 가르쳐 줄 테니 참으라."고 하여 육신보살이 오길 기다렸다고 한다.) 다음날 밤에 천룡화상이 찾아와서 자신의 제자인 실제스님이 저지른 실례를 사과하였다. 구지선사는 천룡화상에게 사과는 됐고 실제스님의 이야기를 하면서 천룡화상에게 "어디 천룡화상의 말을 해보시오."라고 같은 질문을 한다. 그러자 천룡화상이 손가락을 하나 뻥 들어보이니 그길로 구지선사가 깨달았다. 구지선사는 이후로 자신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무슨 질문을 하든지 손가락 하나만 들어 보였다고 한다. 구지선사 밑에 동자스님이 계셨는데 어느 날 구지선사가 없을 때 찾아 온 사람이 그냥 돌아가려고 하자 구지선사의 답은 하나밖에 없으니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하였다. 그 손님이 동자스님에게 '불법적적대의'를 물어보니 동자스님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답을 해주었다. 구지선사가 돌아오는 길에 그 손님을 만나 자신의 제자인 동자스님이 한 짓을 들었다. 이에 구지선사가 동자스님에게 구지선사를 찾아 온 손님에게 손가락설법을 하였는지 물어보니 동자스님이 신이 나서 그렇게 하였다고 하였다. 구지선사가 다시 한 번 그렇게 해보라고 하고 동자스님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이자 지니고 있던 삭도로 동자스님의 그 손가락을 잘라 버렸다. 동자스님이 놀라서 도망을 치는데 구지선사가 동자스님을 불러 세우고 다시 한 번 불법적적대의를 물으니 동자스님이 무심코 손가락 하나를 들려고 하는데 손가락이 없는 거기에서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도는 손가락 끝에 있지 않고 손가락을 들려고 하는 거기에 있고, 조주무자화두도 있고 없음에 있지 않고 불성에 있다. 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물고 개는 돌을 따라 간다.
남전선사의 '남전참묘'와 조주선사의 '조주대혜' 이야기는 연속되는 이야기여서 벽암록에서도 연이어 실려 있다. 남전선사의 제자인 조주선사가 외출한 어느 날 동편과 서편의 스님들이 법당의 고양이를 두고 서로 자기들의 것이라고 다투고 있었다. 남전선사가 화가 나서 스님들 앞에서 그 고양이를 들고 낫으로 베려고 하면서 "이 자리에서 도가 무엇인지 한마디를 이르면 고양이를 살려 두지만 이르지 못 하면 이 고양이를 죽이겠다."고 한다. 스님들이 한 마디도 못하자 남전스님이 낫으로 고양이를 베어 버렸다. 그 날 밤 조주선사가 돌아오자 남전선사가 조주선사에게 그날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너라면 어떻게 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조주스님이 신고 온 신발을 머리에 이고 법당을 나갔다. 이에 남전선사가 "니가 있었더라면 그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라고 한탄하였다. 이뭣고? 참고로 영화 '할'에서는 이 이야기에 대하여 몇 마디를 더 한다. 스승스님은 "나라면 법당의 부처님을 들고 나갔을 것이다."고 하고 제자스님은 고양이를 벤 이야기를 하면서 스승스님이 "내 목도 쳐보라."고 하자 "벌써 땅에 떨어졌습니다."고 한다. 이뭣고?
영화 '할'에서는 이외에 육조혜능선사의 깃발 이야기도 차용하고 있다. 육조선사가 뭄을 숨기고 있을 때 스님들이 바람에 깃발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깃발이 움직인다." , "아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다투고 있는 것을 보고 "깃발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고 니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한 것을 차용하여 스승스님이 노를 젓고 있는 제자스님에게 "배가 가느냐. 물이 가느냐."고 묻는다. 이뭣고?
다음에 또 보면 또 재미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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