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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생애

참선

by 노하시원 2016. 1. 24.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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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는 부처님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자면 먼저 부처님의 생애를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생애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전생에 많은 선업을 쌓았고, 우주가 생성파괴를 반복하기를 몇 번이나 하기 전 아주 먼 전생에 수메다라는 바라문 청년이었습니다. 수메다 청년은 연등불에게 연꽃을 공양하고 옷과 머리를 풀어 부처님이 가는 길에 깔아드려 연등불 부처님으로부터 앞으로 백겁 뒤에 부처가 되어 석가모니 부처라 불릴 것이라는 수기를 받았습니다. 수메다청년은 이후 아홉빛깔의 사슴, 원숭이의 왕, 굶주린 호랑이에게 몸을 바치는 왕자로 태어나 수많은 선업을 쌓고 보살행을 하여 연등불이 예언한 백겁에서 아홉겁을 줄여 91겁에 이미 성숙하였습니다. 이후 여러 부처님을 모셨고 부처가 되기 위하여 도솔천에 태어났습니다. 도솔천에서 부처가 되기 위하여 태어날 곳을 찾다가 인도북부 석가(샤카)족이 세운 작은 국가인 카필라바스투로 태어날 곳을 정하고, 아버지를 숫도다나왕, 어머니를 마하마야 왕비로 정한 뒤에 여섯 개의 상아가 달린 흰 코끼리가 되어 마야왕비의 태에 들어갔습니다.  

마야왕비는 해산일이 다가오자 친정이 있는 꼴리야로 가기로 했습니다. 꼴리아로 가던 중 룸비니에서 산기를 느껴 룸비니 동산에 있던 무우수 나무의 늘어진 가지를 잡고 오른쪽 옆구리로 부처님을 출산하였습니다.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사방을 둘러보고 동서남북 상하 여섯 방위를 항하여 일곱걸음씩을 대딛고 “하늘 위 하늘 아래 나만이 오직 존귀하니 괴로움에 쌓인 삼계를 평온하게 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의 걸음마다 연꽃이 나타났습니다. 구룡못에서 9마리의 용이 나타나 부처님을 목욕시켰습니다. 숫도다나왕은 부처님의 이름을 싯다르타로 정하였는데 이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싯다르타의 32호상을 본 점성술사들은 싯다르타가 대장부상으로 앞으로 무기 없이 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릴 전륜성왕이 되거나, 출가를 할 경우 부처가 되어 인간세계에 안락을 가져다 줄 운명이라는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시타 선인만은 싯다르타가 훗날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마야부인은 해산한지 7일만에 숨을 거두고, 싯다르타는 마야부인의 동생이자 부처님에게는 이모가 되는 마하프라자파티에 의하여 길러집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전생을 까마득하게 잊은 채 태자로서 호화로운 삶을 삽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언어, 수학, 무예 등을 익혀서 이미 스승을 넘어서는 경지에 이릅니다. 어느날 싯다르타 태자가 농경제를 지내러 가던 중 농민들의 고된 삶을 보고 살아있는 새가 살아있는 벌레를 먹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동산에 올라 깊은 명상에 빠집니다. 그 때 태자가 명상을 끝낼 때까지 나무의 그림자가 옮겨가지 않았습니다.

태자는 야소다라를 태자비로 맞이합니다. 숫도다라왕은 혹시나 싯다르타가 출가를 할까봐 세 채의 궁전을 주고 온갖 호화로움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숫도다라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싯다르타 태자는 동문으로 나갔다가 노인을 보고, 남문으로 나갔다가 병자를 보고 , 서문으로 나갔을 때 장례행렬을 보고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늙음, 질병, 죽음에 관하여 고민을 하게 되고 이것이 모두 태어남과 관련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북문으로 나갔다가 출가사문을 보고 인간의 괴로움인 생로병사와 윤회를 해결하기 위하여 출가를 결심합니다.

출가를 결심하고 궁으로 가는 도중에 야소다라 태자비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라훌라(장애)가 생겼구나.”하고 외쳤다고 합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궁으로 와서 아버지에게 출가의 뜻을 밝힌 뒤에 모두가 잠든 밤 마부 찬타카에게 애마 칸타카를 이끌도록 하고 성을 빠져나옵니다.

싯다르타 보살은 마이네야에 이르러 마부 찬타카에게 보배와 장식을 주면서 가족들에게 출가의 뜻을 알리라고 하고,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지나가던 가사를 입은 사냥꾼과 옷을 바꿔 입고 출가사문이자 부처가 되기 전단계인 보살의 길로 들어갑니다.

싯다르타 보살은 출가 후 쿠시나가르로 간 다음 바이살리로 갔습니다. 부처님이 된 후 마지막 열반을 하러가는 길과 반대입니다. 가는 길에 여성 수행자인 비류범지와 파투바범지의 도움을 받고 바이살리의 발가바 선인에게 갑니다. 발가바 선인의 무리는 고행으로 수행 중이었는데 싯다르타 사문은 이렇게 해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길을 나섭니다. 발가바에게 소개받은 바이살리의 아라다 카라마 선인을 만나 귀의하여 무소유처를 깨닫고, 이후에 마가다국의 우드라카 라마푸트라 선인에게 귀의하여 비상비비상처를 깨닫지만 곧 이들의 경지를 넘어섰고 이들의 방법으로는 생로병사와 윤회를 해결하고 최상의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아라다와 우드라카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뒤에 제일 처음 설법을 하고자 찾으려고 했던 사람들인데 모두 부처님의 성도 전에 죽었다고 합니다.

보살은 마가다국 라즈기르로 가서 마가다국의 왕인 빔비사라왕을 만나게 되는데 빔비사라왕은 싯다르타 보살이 범상치 않음을 보고 나중에 부처가 되거든 반드시 자신을 만나러 와달라고 합니다. 빔비사라왕은 37년간 부처님과 우정을 나눈 왕이고 불교신자로 많은 공양을 하였습니다. 이후 아들에게 잡혀 감옥에서 열반하였습니다. 빔비사라왕의 손자가 바로 불교문화를 이끈 아소카대왕입니다.

보살이 마가다국 선인인 우드라카를 떠나 다시 길을 떠날 때 우드라카 밑에 있던 5명의 수행자가 부처님을 따라 나섭니다. 싯다르타 보살은 우루벨라에 이르러 그 때까지 그 예가 없는 모진 고행에 들어갑니다. 하루 쌀 한 알까지 곡기를 줄이고 단식을 하여 배가 등에 닿을 정도로 말랐고 호흡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육체에 대한 고행으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고 이 육체를 통하여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싯타르타 보살은 걸식을 위하여 묘지에 있는 분소의를 입고 길을 나섭니다. 가던 길에 수자타 처녀가 바친 우유죽을 먹고 기력을 회복합니다. 싯다르타 보살을 따르던 5명의 수행자는 보살이 고행을 그만두고 다시 식사를 시작한 것을 보고 실망을 하여 싯다르타 보살을 떠나 바라나시 교외 사르나트 녹야원으로 가서 그들만의 수행을 계속 합니다.  

싯다르타 보살은 기력을 회복한 후에 부처가 되기 위한 마지막 수행으로 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팝필라나무. 부처님의 성도 후 보리수로 불림) 아래 앉아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일어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명상에 듭니다. 먼저 수행을 방해하는 마라 파피야스(마왕 파순)를 불러냈습니다. 마왕 파순은 전생 한 번의 공양으로 욕계 최상지인 타화자재천의 왕이 된 인물이었습니다. 마왕 파순의 유혹을 차례로 물리친 보살은 초저녁에 4선정에 도달하고 한밤중에 숙명통이 열려 우주가 생성되던 시기부터의 무수한 생애를 기억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다음 날 새벽인 기원전 음력 589년 12월 8일, 출가하신 지 6년째, 부처님의 나이 35세에, 생로병사와 윤회의 비밀인 십이연기를 깨닫고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고 성도하게 됩니다. 이 때 부처님은 “과거 몇 번이고 되풀이되어 온 생사윤회는 마침내 끝을 맺고, 맑고 깨끗한 수행은 완성이 되었다. 해야 할 일은 모두 다 해 놓았으며, 또다시 삶과 죽음을 되풀이하는 일 없이 최고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신들의 축복과 찬탄을 받았습니다. 부처님은 광명과 보살들의 입을 통하여 21일간 화엄경을 설하셨는데 인간들 중에는 이 설법을 알아들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부처님은 성도자리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일주일마다 자리를 옮겨서 7주간 7번 자리를 옮겼고 49일에 걸쳐 성도의 기쁨을 누립니다.

부처님은 최초의 설법대상으로 두 스승인 아라다와 우드라카를 생각했지만 이들이 이미 죽은 것을 알고 자신을 따르던 5명의 수행자가 수행을 하고 있는 곳인 바르나시의 사르나트 녹야원으로 갑니다. 거기서 5명에게 인간들에 대한 첫 설법인 초전법륜을 하여 이들을 제도합니다. 당시 바르나시 상류층 자제인 야사스가 부처님에게 출가한 것을 계기로 바르나시의 상류층 젊은이 54명이 출가를 하여 아라한의 지위를 얻습니다. 부처님은 얼마 뒤 제자 60명에게 갈 곳을 정해주면서 이제 각자 흩어져서 부처님이 증득한 진리를 설파하라고 하고 모두 떠나보냅니다.

부처님은 바르나시에서 제자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빔비사라왕이 있는 마가다국으로 갑니다. 부처님은 마가다국으로 가서 불을 섬기던 바라문 3형제와 그의 제자들을 제도하게 되는데 우루빌라 카샤파와 그의 제자 5백명, 나니 카샤퍄와 그의 제자 3백명, 가야 카샤파와 그의 제자2백명입니다. 이들 바라문 1천명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보고 모두 부처님에게 귀의하여 비구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마가다국 라즈기르로 가서 빔비사라왕을 만나고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의 재가제자가 되었습니다. 빔비사라왕은 부처님과 천 명의 비구들이 머물 곳으로 라즈기르의 죽림정사를 바칩니다. 죽림정사는 불교 최초의 사찰입니다. 라즈기르 근처에 우파팃샤와 콜리타라는 귀족청년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일찍이 호화로운 삶에 실증을 내고 자신들을 제도할 스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죽림정사에 부처님이 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의 스승인 산자야와 제자들 250명을 설득하여 이들을 데리고 죽림정사로 가는데 부처님은 이들이 오는 것을 보고 바로 “이들은 나의 두 큰 제자가 되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후부터 우파팃샤는 사리불(샤리푸트라)존자, 콜리타는 목련(목갈라나)존자라고 불리게 됩니다.

부처님이 죽림정사에 계실 때 카사파라는 부유한 집의 청년이 부처님께 출가하였는데 이 카사파가 부처님의 후계자가 된 마하가섭입니다. 부처님은 마하가섭이 오는 것을 알고 미리 나가 있었다고 합니다. 마하가섭은 부처님을 한 눈에 알아보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옷은 부처님을 위하여 접어서 깔고 대신에 부처님의 분소의를 받았습니다.

큰 제자들이 가세를 하면서 교단이 굉장한 규모로 커지게 되어 교단을 통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규율이 생겼고 인도의 우기때를 피하여 안거를 하는 우안거제도가 생겼습니다.

마가다국에서 부처님의 명성과 교세가 뻗어나가 옆 코살라국까지 미쳤습니다. 코살라국 수도 스라바스티에는 큰 부자인 수닷타장자가 있었는데 마가다국에 들렀다가 부처님을 만나 교화를 받아 다음 우안거지로 스라바스티로 오라고 초대를 합니다. 부처님은 수닷타장자의 초대로 스라바스티로 갑니다. 수닷타장자는 안거지로 제타 태자 소유의 공원을 생각했습니다. 공원에 금전을 가득 깔아 제타 태자의 공원을 샀습니다. 제타 태자는 수닷타장자가 진짜로 금전을 까는 것을 보고 자신도 일부 땅을 공양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들이 바친 정사가 바로 기원정사입니다. 수닷타장자는 고독한 이에게 공양을 많이 하여 급고독이라고 하고, 제타 태자는 기타라고 합니다. 이 둘의 이름을 따서 기원정사를 기수급고독원이라고 하는데 금강경의 무대이자 부처님이 가장 많은 19안거를 하신 곳입니다. 부처님은 스라바스티에서 100명을 죽이고 손가락 자르는 살인자 앙굴리마라를 제도하여 출가시킵니다.  

부처님은 스라바스티 기원정사에 머물면서 자신의 고향인 카필라바스투로 갑니다. 부처님이 고향으로 간 뒤에 자신을 길러 준 이모 마하프라자파티의 아들 난다를 출가시키고, 자신의 아들 라훌라도 출가시켰습니다. 이후 석가족의 자제들의 출가가 이어졌는데 부처님의 사촌인 아난다와 데바닷타도 출가를 하였습니다. 아난다는 부처님의 상임 시자가 된 후 부처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25년간 부처님의 곁을 지켰습니다. 모든 경전에서 여시아문, 즉, 내가 이와 같이 들었다라고 하는 문장에서 들은 자가 바로 아난다입니다. 아난다는 부처님이 입적할 때까지 득도를 하지 못 하다가 부처님 사후 마하가섭의 충고로 득도하고 1차 결집에 참여하여 경전편찬에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다른 사촌이자 아난다의 형이었던 데바닷타는 부처님을 무척 음해하고 방해를 하다가 부처님이 마야부인을 제도하러 도리천을 올라간 직후 우물에 빠져 죽었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도리천으로 가서 마야부인을 제도하고 상카시아로 내려오기도 합니다. 부처님은 도리천에 3일을 머무셨는데 이생의 시간으로는 3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부처님의 양어머니 마하프라자파티가 부처님을 위하여 황금가사를 준비하였는데 부처님이 입지 않고 여러 존자들도 거절하여 결국 황금가사가 미륵 비구에게 갔습니다. 이 미륵비구는 부처님 열반 전에 열반하였는데 부처님으로부터 부처님의 불법이 사라진 말세에 부처로 출현하여 제도할 것이라는 수기를 받고 지금 도솔천에 계십니다.

부처님은 독수리모양의 영축산에 자주 올랐고 그 곳에서 법화경을 설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기원정사에서 바이살리로 갑니다. 여기서 마지막 안거를 보냈습니다. 이 바이살리는 유마경의 주인공 유마거사(비말라키르티)가 살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부처님이 바이샬리에 머무실 때 마하프라자파티가 석가족의 여성들을 이끌고 부처님을 찾아와서 여러 차례 출가를 요청하였지만 부처님은 당시 정사의 환경이 여성출가자가 수행을 할 환경이 아니어서 출가를 거부하였습니다. 아난다가 여러 번 간청하여 드디어 마하프라자파티에 대한 출가가 허락이 되었습니다. 다만 당시의 수행환경상 비구에 비하여 더 많은 계율을 따르도록 하였는데 마하프라자파티가 이를 모두 받아들이면서 불교사 최초의 비구니가 되었고 이후 비구니승단을 이끌었습니다.

부처님은 입적하시기 3개월 전에 바이살리에 있는 수행승들을 모두 모이게 하여 석 달 뒤에 열반하실 것을 예언하십니다. 열반을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하고자 다시 고향으로 가던 중 파바의 수도 쿠시나가르로 가서 그 곳 교외 망고나무 과수원에 머물면서 춘다의 공양을 받았습니다. 춘다가 주는 전단나무 버섯을 공양 받고 나머지 비구들에게 주지 말라고 하시고 다 땅에 파묻으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춘다의 공양을 받고 돌아오시는 도중에 설사 증세를 보여 우파바타바 사리나무 숲으로 들어섰습니다.

부처님은 두 그루의 사라나무(사라쌍수) 아래에 누워 있었습니다. 부처님이 곧 열반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수밧다라는 사문이 찾아왔고 마지막으로 수밧다를 제도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비구들을 모아놓고 “제행은 무상하니 불방일정진하라. 나는 방일하지 않았으므로 최상의 바른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 정진하라.”라고 말씀하시고 열반하셨습니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날은 우리나라 달력으로 기원전 음력 544년 2월 15일이라고 합니다.

부처님 다비식 후에 유족측과 여러 나라의 왕들이 부처님의 사리분배를 놓고 다투다가 8개로 나누었고 8개의 장소에 봉안이 됩니다. 부처님이 하신 말씀은 마하가섭의 주도로 1차 결집이 이루어져 아난다가 들은 것을 토대로 경전으로 정리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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