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허득통선사 지음, 학산대원선사 번역-
1. 유일물
한 물건이 무슨 물건인가? O
다만 이 일착자는 지극히 오묘하여 중생의 정이 끊어졌으며
어른어른하여 보면 있는 듯하고
번개같이 빨라서 가히 따라가기 어렵고
황홀연하여 가히 측량하기 어려우니라.
미혹한 것도 아니고 깨달은 것도 아니어서
범부다 성인이다 칭할 수 없으며,
나도 없고 사람도 없음이라 가히 나다너다하여
이름을 붙일 수 없으므로
다만 이름하여 한 물건이라.
육조혜능조사께서 이르시길
‘한 물건이 있으되 머리도 꼬리도 없으며
이름도 문자도 없는데, 위로는 하늘을 버티고 섰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며 중간에 서 있고,
밝기로는 해와 같고 검기는 흑판과 같으며,
움직이고 쓰는 가운데 항상 존재하되
움직이고 쓰는 가운데 거두어 얻지 못하는 자가 이것이니라.’고 하셨느니라.
비록 이와 같으나 한 물건이라 해도 또한 억지로 칭한 말이라.
그런고로 남악회양화상께서는 '설사 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맞지 않습니다' 하시니라.
2. 절명상
한 물건이라는 것은 당처를 떠나지 않고 항상 담연상적한 고로 고요공적하며 허공과 같이 텅 비어서 이름이 없는 것으로 가히 이름을 삼음이요, 모양 없는 것으로 가히 보는 것이니라.
3. 관고금
천 겁을 지났어도 옛 것이 아니고, 만 세를 뻗쳐도 장금이 아니라.
한량없는 세월이 지나서 산과 바다가 서로 변천하니
풍운이 변태하는 모양을 보았는가.
4. 처일진 위육합
무릇 사물에 있어서
작은 것은 능히 큰 것이 아니고 큰 것은 능히 작은 것이 아니로되
이 한 물건은 반대로 돌이켜보면
능히 작기로 말하면 능히 인허(隣虛. 원자, 극소의 물건, 색법의 근본물질, 소승에서 삼재겁이 다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허공에 흩어져서 존재한다는 물질)에 들어가고
능히 크기로는 우주법계를 에워 쌌음이니라.
5. 내함중묘 외응군기
체량이 매우 넓고 커서 크게 포용하는 모양이 항하사 모래수와 같은 성품의 덕과
한량없는 묘용이 원래부터 스스로 구족해 있느니라.
물건이 오면 즉시 응하여 느끼고 서로 통하는 것이 밝은 거울 같아서
검은 것이 오면 검은 것을 나타내고,
붉은 것이 오면 붉은 것을 나타내니.
큰 종이 걸려 있어 크게 치면 크게 울고 작게 치면 작게 울림과 같음이니라.
6. 주어삼세 왕어만법
하늘은 이것으로써 덮고, 땅은 이것으로써 싣고, 사람은 이것으로써 그 가운데에 처해 있으며 일월성진과 초목곤충에 이르기까지 무릇 모양과 형색이 있는 모든 것은 이것을 근본으로 삼아서 성립하여 생기지 아니함이 없느니라.
탕탕하다는 것은 광대하고 수승한 것이 제일이요, 외외하다는 것은 가장 높고 존귀하여 위없는 것이니 이것이 왕이 되고 주인이 되는 까닭이니라, 결정코 없는데 성품은 스스로 신령스럽게 알고 있으며, 결정코 있는데 찾으려면 자취가 없으니 이런 까닭에 신이 아닐까 했느니라.
유형은 하늘과 땅이 제일 먼저요, 유형의 최후도 역시 하늘과 땅이라. 유형이 제일 먼저 존재하는 것이 하늘과 땅이라면 이는 시작이 있음이나 이 한 물건은 시작을 궁구하여 얻기가 불가능함이니라.
시작이 이와 같은 까닭에 이미 종말도 이와 같아서 또한 궁구하여 얻기가 불가하니, 이런 까닭에 검은 하늘처럼 그윽하다 함이니라.
이 물건은 깊고 현묘함에 텅 비어 밝고 영통하나 그렇다고 있다고 정하지 못함이요, 없으나 없다고 정하지 못함이니, 언어가 끊어진 자리며 마음 갈 곳이 없음이라, 고로 이렇게 말하니라.
이 물건이 성인도 아니고 범부도 아니로되 성인이고 범부이며, 깨끗함도 아니고 더러움도 아니로되 더럽기도 하고 깨끗하기로 하니라. 그런 까닭으로 이르시되 “손으로 깨진 그릇을 잡고는 몸에 비단 옷을 걸치고 뽐내며, 어떤 때는 술에 취해서 횡설수설 욕하다가 홀연히 향을 사루고 예를 드림이라.”하니라.
저 하늘의 해에 비유컨대 하늘이 어찌 맑기만 하며 또한 어찌 항상 흐리기만 하리요. 해가 어찌 밝기만 하고 또한 항상 어둡기만 하리요. 한 생각 미혹으로 구름이 허공에서 일어나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두우며, 한 생각 깨달음으로 바람이 검은 구름을 쓸어버려서 상하가 함께 밝음과 같음이라. 더럽고 깨끗한 것이 일어나는 까닭으로 성인과 범부가 만들어짐이니라.
성인과 범부가 이미 나누어진즉 스스로 감응함이 일어나서 범부는 미혹하여 풍화를 목마르게 갈망하고 성인은 깨달아 중생을 위한 자비심을 일으킴이라.
그런 까닭으로 나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적멸도량에서 처음 정각을 이루시사 사자후를 하시되 ‘기이하다!’ ‘기이하다!’ 감탄하시며 일체중생을 두루 살피시니, 중생마다 여래의 지혜덕상이 갖추어 있건마는 다만 망상집착으로 증득하지 못함이니라. 이에 인연 없는 자비를 굴리시며 무언의 설법으로 널리 가르침을 연출하시고 두루 빠짐없이 중생의 마음 밭에 흘러들어가게 하시어, 편안히 도업을 번성케 하고 마음의 꽃밭을 발명케 하시니, 대지가 함께 봄을 맞아 만물이 감동하여 빛남이로다.
반야라는 것은 한 물건이라 억지로 이름을 붙인 것이요, 경이라는 것은 물건을 그릇에 담는 그릇이라. 이 반야경은 부처님이 친히 베푼 말씀이며 다른 사람들이 설한 것이 아니요, 법문의 깊은 근본이 외도들의 자질구레한 가르침과는 같지 않느니라.
아상 인상 등의 번뇌 숲이 마음의 땅에 무성하므로 금강의 불꽃으로 자취 없이 쓸어냄이라. 법과 비법, 이 두 가지의 안개처럼 미혹한 마음이 공한 성품을 어둡게 가리고 있으니 그런고로 겹겹이 혼미한 미혹이라. 한 번 지혜의 태양이 비추니 혼미한 미혹은 단번에 깨지고 삼공이 밝게 나타남이니라.
법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거늘 집착하므로 존재한다 하고, 성품은 끊어진 것이 아니거늘 집착해서 공하다 하나니, 공에 집착하므로 공이나 공이 아닌 줄을 알지 못한즉 단견의 굴에 떨어짐이요, 분명이 있으나 있다고 집착하므로 있는 것이 아닌 줄을 알지 못한즉 항상 존재한다는 상견의 굴에 떨어짐이니라.
실제는 공이다, 유다 하는 양변을 버려서 한 맛도 또한 없는 곳에서 부처님께서는 삼공으로 열어 보여서 단견과 상견의 두 굴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있다 없다 하는 양변을 초월하여 깨닫게 하시니 이와 같이 원만히 닦고 원만히 증득케 함이니라.
금강의 묘한 지혜가 굳건하여 다른 사물이 꺾지 못하고, 날카로워서 능히 중생의 원결을 끊어버리니, 반야의 웅대한 설명은 금강의 묘한 지혜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라.
그런고로 날카로워서 능히 중생의 의심의 그물을 찢어버리고, 견고하여 외도와 마구니들이 파괴하지 못하게 함이니라. 부처님과 불법이 모두 이 경으로부터 흘러나오므로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다섯 분의 대사가 모두 이 경으로 인하여 인천의 안목을 갖추신 고로 하늘과 사람이 모두 존경함이요, 법을 모두 통달하신 고로 법의 바다에 들어감이라고 했느니라. 바른 지혜의 눈을 통달하신 고로 법의 바다에 들어감이라고 했느니라. 바른 지혜의 눈을 통달한 자는 진리를 밝혀서 세속의 이치를 요달하고, 중도를 통달하여 통하지 않음이 없는 것을 정안, 즉 바른 지혜의 눈을 갖춘 자라하니라.
밀인이란 것은 중생이 미혹한 바의 진리요, 불조가 서로 전하는 법인이라. 오대사가 이와 같은 정안을 갖추셨으며 이와 같은 밀인을 전하시사 큰 입을 열어서 크게 설법하시니 그 드날림이 땅을 진동하고 고금을 밝게 비추시니라. 따라서 보고 듣는 이로 하여금 모두 교화해서 그릇됨을 알게 하고 선하도록 천도하시니 종과 설, 즉 최상의 진리를 깨닫는 것과 깨달은 진리를 설해 주는 것을 다 겸하여 통하고, 이해와 행동이 서로 상응하여 크게 교화함은 모두 이 경에서 얻었음이니라.
이미 이 경으로 당세에 이익을 주었고, 또한 해석을 지어서 만고에 아름다움을 유통하셨도다.
옥에 티가 없는데 무늬를 새기매 도리어 깨끗한 옥의 온윤한 덕이 상하거나와. 이 주해는 이에 반하여 경의 말씀을 더욱 정밀하게 하고 경의 뜻을 더욱 밝게 해서 드디어 보는 자로 하여금 미혹을 헤쳐서 지혜를 보게 하고, 듣는 자로 하여금 활연히 마음을 열게 함이로다. 옛 도인이 가르치시되 ‘삼승십이분교의 묘한 이치를 체득한다면 어느 곳에 다시 조사서래의가 있으리요.’하시니 교외별전의 뜻도 역시 금강경의 뜻 밖에 있는 것이 아니로다.
오히려 교의 말씀이 섭수하는 바가 있어 은은하여 나타내지 아니하거늘 이제 모든 조사들이 실답게 드날리게 하시니 교의 뜻이 모두 밝을 뿐만 아니라 별전의 뜻도 또한 활연히 밝음이로다. 어느 누가 말하길 ‘단적으로 전한 직지의 뜻이 어찌 이 교의 섭수하는 바가 되겠는가.’하고 의심하니 황매와 조계를 보면 족히 알 수 있느니라.
이 오가해를 만난 것이 경사로운 일이라. 이 주해로 인하여 정안이 활짝 열리면 법인이 바로 손 안에 있고 교화의 길이 자기에게 있느니라.
이 오가해를 편집한 자의 이름을 나타내지 않음을 탄식함이라. 이 한 권의 책 안에 부처님의 법등과 조사의 불꽃이 서로 어울려 비추어서 가히 한 번 읽으매 곧 불조의 마음을 함께 보게 되니, 이것이 내가 기뻐하는 까닭이니라.
삼척 거문고에 묘음이 간직되어 비록 묘음을 낼 수 있으나 묘한 손가락이 없으면 마침내 능히 소리를 내지 못함이요, 묘한 손가락이 있어서 능히 거문고를 퉁기나 소리를 듣고 감상할 수 있는 자를 만나기 지극히 어려우니, 소리를 듣고 감상하는 자를 만나기 어려운고로 그릇되게 아아를 듣고 양양이라고 하는 자가 많도다.
한 부의 신령스런 경문에 묘한 이치가 있으니. 비록 묘리가 있어도 만약 장인의 손이 아니면 누가 능히 붓을 들고 사실에 맞게 표현하리요. 그러나 비록 사실에 맞게 표현해도 그것을 보고 그대로 이해하는 자가 매우 적으니, 잘 이해하는 자가 없는 고로 얕은 것을 깊은 것으로 삼고, 깊은 것은 얕은 것으로 삼는 자가 많으니 이것을 탄식함이로다.
진실과 거짓됨이 서로 섞여서 물에 탄 우유를 가릴 수가 없으니, 이렇게 잘못된 까닭은 대개 글로 써서 전하는 과정에서 잘못이 있을 뿐이니라.
문자는 도를 나타내는 도구며 사람을 인도하는 방편이니, 모름지기 문자와 뜻이 도와서 혈맥이 관통하고, 정밀하고 깊고 자세히 구비해서 빠지고 넘치고 바뀌고 잘못된 잡다한 것을 맛본 연후에 능히 사람의 견해를 열어서 만세에 귀감을 얻느니라.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안목을 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사람을 미혹하게 하는 도구가 되느니라.
만약에 현철한 안목이 아니면 잘못된 것에 미혹되지 아니할 수 없느니라. 비록 현철한 안목은 아니나 만약 마음과 생각이 고요히 맑아서 연구하면 글과 뜻의 잘못된 곳을 자세히 밝힐 수 있으리라.
내가 불민하지만 진실과 가짜를 가리고 잘못된 것을 바로 하였으니, 그러나 이는 증거가 있음으로써 그런 것이요 억지로 고친 것은 없음이니라. 만약 자기의 뜻을 책 안에 붙여두면 이는 달통한 자가 할 바가 아니요, 빠졌거나 잘못된 것이 있음을 알고서도 그것을 써서 전하지 않으면 금일에 교정의 공이 없음이라. 후세에 혹 교정의 설을 듣고 거의 온전하다고 여겨 살피고 바로 잡지 않는다면 불조의 바른 뜻이 거의 땅에 떨어지리라. 그런고로 부득이해서 책 말미에 써서 전하노라.
주해가 그릇되고 틀린 것은 뿌리가 뭉치고 엉킨 것과 같아서 걸리고 막혀서 통하지 못하니, 만약 한결같이 남들이 그르다할까 두려워 잘못된 것을 알고도 해결하지 않으면 어찌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함이 되겠는가. 후세에 반드시 잘못된 것을 이어받고 그르친 것을 밟아서 망령되이 천착을 내어서 그 설로써 통하기를 구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무릇 이와 같은즉 해결하지 못한 폐단이 저 불조의 말씀에까지 이르러 마침내 뒤섞인 폐단을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통달도사가 취할 바가 아님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마침내 굳이 사양하지 아니하고 결단을 내어 써서 전함이로다. 무릇 그런 연후에야 한 경의 뜻이 하늘에 빛남이요, 당년의 지혜로운 달이 장차 크게 천하에 밝으리니 누가 무릇 이 같은 이치를 알겠는가. 이제 내가 스스로 그러함을 알아서 기쁘게 생각함이로다. 그러나 이런 말과 설은 모기가 허공을 두드리는 것과 같으니, 깨달은 자는 마땅히 이것으로 또한 웃음거리를 삼으리라.
- 알기쉬운 대승 최상승의 가르침 금강경오가해강설. 학산 대원 대종사 강설, 지선 엮음. 운주사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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