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학림사 오등선원 조실 한암대원스님
1. 閒庵大元스님 계미년 동안거 결제법어
陞座杖三下 擧示云 會?
直下會則落第二頭 若不會則天地懸隔
總不是 如何卽是耶? 喝云
金龍不守於寒潭 玉豈棲於影
畢竟甚? 良久 杖一下云
生兒石女老黃梅 鬼頭火面一隻眼
衲子問 難知更道
師曰 冬至陽胎生 夏至陰上昇 夷
時會大衆還委悉? 若不知更聽注脚
一二三四五六七 金剛出禾平錘汗
七六五四三二一 扶桑枝上縣紅日
鷺鸞牽動鐵崑崙 矣得虛空半邊側
碧眼黃頭瞻喪魂 驚走入大圓覺海
藏縱遁跡 沈欄鼻空 要且규氣不得
箇事且止 只如諸人
日用二六時中 畢竟作生履踐 良久 云
不因樵子路 爭到葛洪家
當陽花易發 背日雪難消 喝
杖三下 下座
법상에 올라 묵연히 앉았다가 주장자를 3번 치고 들어 보이고 이르대 아시겠습니까? 직하에 알은 즉 제2두에 떨어짐이요. 만약 알지 못한다고 한즉 하늘 땅 사이로 거리가 멀다. 총히 옳치 못하니 어떻게 하야사 곧 옳겠는가?
할 하시고 이르대 금룡이 차가운 못을 지키지 아니하는데 옥토끼가 어찌 저 작은 그림자에 머무르겠는가, 필경에 무엇인고?
양구 하시고 주장자를 한번 내리치고 이르대 돌 여자가 아이를 낳으니 노황매요, 귀신 머리에 불의 얼굴에 외짝 눈이로다. 납자가 묻되 알기 어려우니 쉽게 일러 주십시오 하니 사가 이르대, 동지에는 양을 잉태하여 내고, 하지에는 음이 상승함이로다. 夷(이) 시회대중은 도리어 아시겠습니까?
만약 알지 못할진댄 다시 산승의 주각을 제청하라 일이삼사오육칠은 금강을 잡아내어 저울 추를 즙을 내고, 칠육오사삼이일은 부상의 나무 가지 위에 붉은 해를 달았도다.
뱁새가 철곤륜을 이끌어 움직이고 허공을 잡아 당기니 반쯤 기울어 짐이로다. 달마와 부처도 담과 혼이 상하고 놀라서 달아나 대원각의 바다에 들어가 종적을 감추니 흔적조차 없고, 어지러운 비공이 침몰하니 요컨대 또한 주기를 얻지 못함이로다. 이 일을 그만두고 다만 저 모든 사람이 이륙시 중에 필경에 어떻게 날을 보내겠는고? 양구에 이르대 나무꾼의 길을 인하지 않고 어찌 신선의 집에 이르겠는고, 따뜻한 햇빛에는 꽃이 쉽게 피고 해를 등지면 눈을 녹이기 어려움이로다. 할 하시고 주장자를 3번 치고 하좌하시다.
2. 한암대원선사 ‘미국 보현사 초청대법회’ 법문 요약
미국 캘리포니아주 헤이월드시에 위치한 보현사(주지 현묵스님)는 지난해 9월29일 ‘창건 10주년 및 천일지장기도 회향식’에 한국의 대표적 선지식인 대원스님을 초청했다. 대원스님은 이날 ‘현대의 삶과 선’이라는 주제로 300명 이상의 내.외국인 불자들을 상대로 법문했다. 다음은 법문 요약.
주장자를 세 번 치고 주장자를 들어 보이시며,
오늘 보현사 10주년 기념 법회와 천일기도 회향에 참석하신 시회대중은 회마(會磨)? 아시겠습니까? 즉하에 여기에서 바로 알았다고 하면 ‘미면야호정’이라. ‘여우의 몸을 면치 못함’이라. 만약 여기에서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모른다고 하면 ‘천지현격’이라.
‘하늘과 땅과 같이 거리가 참으로 멀다.’ 그러면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모조리 전부 나는 관계치 않겠다, 둘 다 나는 여의였다, 관계하지 않는다고 하면 ‘평지사인’이라. ‘평평한 땅에서 죽은 사람’이라. 필경에 여하오? 필경에 그러면 어떠한 것인고?
하-악!
수류천파월(水流千波月)이요
산쇄일계운(山鎖一溪雲)이로다.
나무아미타불.
흐르는 물에 일천 파도의 달이로다.
산은 한점 계곡의 구름에 막혀있음이로다.
시회대중은 함지마? ‘시회대중께서는 도리어 아시겠습니까? 만약 부지인덴, 만약 알지 못할진데, 고인의 말씀을 인용하여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平地死人…그러면 어떠한 것인고
영산회상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걸식을 마치고 발우를 씻고 정좌하고 계실 때, 마침 상수 제자인 가섭존자가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아무 말이 없이 묵연히 있다가 눈을 깜짝깜짝 거렸습니다. 가섭존자는 거기에서 흔쾌히 미소를 짓고 절을 하고 돌아 나갔습니다. 이것을 오늘날 여기에 참석하신 시회대중께서 바로 보면 여기에 여래선과 조사선이 모두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눈 푸른 납승의 문하에서는 오히려 반 밖에는 안된다. 그러면 어떻게 일러야 전체의 일구를 이를 수 있겠습니까?
산모가 동시에 이아를 불생이로다(産母同時 二兒不生)
아기를 가진 여자가 달이 차서 아기를 놓을 때 동시에 두 아기를 놓을 수는 없도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어떠한 것이 여래선 입니까? 어떤 것이 여래의 청정선 입니까?
인인족장에 모생일장이로다(人人足掌 毛生一丈).
사람 사람이 발바닥에 털이 한자나 길었구나.
그렇다면 어떤 것이 조사선입니까?
뾰족한 것은 송곳이요, 쇠뭉치는 둥금이로다.
오늘 이 회향식에 간단명료하지만 여기에서 법문은 다해 마친 것입니다. 오늘 회향일에 참석하신 대중이 모두 그 마음 같지 아니한고로 신도님을 위해서 부득이 제2 문중을 향해서 한 말씀 더 덧붙이겠습니다.
강원도 금강산이 아주 명승지입니다. 금강산을 가는 도중에는 건봉사라는 큰 절이 있습니다.
건봉사는 약 200~300명의 대중을 수용했습니다. 그런데 그 위치가 금강산에 가는 도중이라, 금강산 가는 스님들이 건봉사에서 항상 쉬어 갑니다.
건봉사의 대중도 먹고살기 상당히 힘든데, 많은 객승이 금강산에 간다고 지나가며 먹고 자니, 모두를 수용하기 어려웠습니다. 조실스님과 주지스님이 방안을 냈습니다.
앞으로 건봉사를 지나는 객스님은 주지스님과 조실스님하고 법거량을 해, 거량에서 이기면 하루저녁 쉬어가도록 하자고 정했습니다. 그렇게 정한 후로 많은 객스님들이 그곳에 와서는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해가 없어져 가는 때쯤 객스님 한 분이 건봉사로 갔습니다. 주지스님이 마침 피곤해 총무스님 내려가 객스님과 법거량를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총무스님은 한 쪽 눈이 없습니다. 애꾸눈인 총무스님은 객스님이 있는 객실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마자 객스님이 거량을 해왔습니다.
손가락을 하나 척 들어 보였습니다. 총무 스님이 손가락을 두 개 들어 보였습니다. 객스님이 다시 손가락 세 개를 들어서 보이거든요. 총무스님이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객스님이 벌떡 일어나서 절을 하더니, “제가 오늘 법거량에서 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떠나 가겠습니다”하며 주지스님 방으로 갔습니다.
“주지스님! 이 산중에는 칼날같이 안목이 트여 있는 스님들만 계시는군요.” “아! 그렇습니까? 그래 오늘 법거량에서 졌습니까?” “아, 제가 손가락을 하나 들어 보였더니, 그 스님이 손가락 둘을 들어 보입디다.”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는데, 손가락 둘을 들어 보인 까닭이 무엇입니까?”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는 것은 불법승 삼보의 불자를 들어 보인 것 아닙니까? 그런데 불(佛)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법(法)도 있다 해서 두 손가락을 보인 것이지요.”
주지스님이 말했습니다. “객스님이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인 것은 무엇입니까?” “예, 불.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승도 있다. 불법승 삼보니라 하고 3개를 들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마지막에 총무스님이 주먹을 쥐고 보이지 않습니까.” “그것은 무엇입니까?” “불법승이 다 하나이니라! 하고 들어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더 드릴 말이 없어 절 하고 나왔습니다. 여기에는 정말 법에 밝으신 분만 계십니다”하고 객스님이 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 총무스님이 오자 주지스님이 말을 했습니다. “총무스님은 객스님에게 법거량을 어떻게 잘했기에 그렇게 객스님이 칭찬을 하더구만.” “칭찬을 해요! 그 고얀 놈입니다.” “왜?” “내가 들어가니까, 그 놈이 손가락을 하나 들어 보입디다.”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이해했느냐?” “뭘 어떻게 합니까? 내 눈이 하나라는 말이지요. 내가 눈이 하나니까 그 놈이 그런 뜻으로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인 것 아닙니까?”
“아, 그래? 그래서 네가 어떻게 했느냐?” “그래서 내가 손가락 둘을 들어 보였지요.” “그래, 둘을 들어 보인 건 무엇이냐?” “내 눈은 하나지만, 니 눈은 두 개다. 이렇게 하고 손가락 둘을 들어 보였지요.” “그래서?” “그러니까 객스님이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입디다.” “그래서 그 세 개는 무엇이야?” “뭐긴 뭡니까? 그 놈 눈 두 개, 나는 하나, 세 개란 말이지요.” “그래서 너는 어떻게 했느냐?” “그래서 제가 화가 나서 주먹을 쥐고 때리려 했더니 그만 그놈이 겁이 나서 일어납디다.”
주지스님이 들어보니 기가 막힌다 말입니다. 하도 기가 막힌 주지스님은 조실스님에게 가서 절을 올렸습니다. “오늘 객스님을 어떻게 처리를 했느냐?”하고 조실스님이 물어보시자, 주지스님이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조실스님께서 총무스님을 불러 크게 경책을 했습니다.
문제는 부처님의 광대한 진리를 말씀드릴 때 법을 듣는 여러 대중이 제 나름대로 이해를 한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생각하고 이해하고 있는 그것이 큰 문제입니다. 마음에 장벽이 쌓이는 것입니다. 마음에 장벽이 쌓임으로, 한 마음 한 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마음 한 몸이 돼야 가정도 화합이 되고 사회도 화합이 되고, 일체 모든 인류가 다 한마음으로 화합이 잘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대중은 모든 모양이 없습니다. 단지 최상의 진리인 이 법의 바다 속에 들어와 법의 일미를 맛보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이해하면 도리어 장벽이 쌓여, 한 마음 한 몸이 되지 못하고 가정과 사회에 불평.불화가 생기며, 그로 인해 우리가 살아가는 가정과 사회의 모든 사람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진정한 화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곧 우리들이 내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 시급한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의 눈을 뜸으로써 우리들이 이 자리에서 갈구하고 있는 최상의 행복, 최상의 편안함, 최상의 극락, 최상의 천당, 이 모든 것을 맛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행복도 거기서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옥도 극락도 없는 것입니다. 천당도 없습니다. 단지 있다면 여러분의 그 마음의 눈을 열지 못하고 장벽이 쌓임으로써 거기에서 지옥과 극락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3. 대원스님 은사 고암스님
1899년 10월5일에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 산동하 어의동에서 태어난 고암스님은 1917년 17세가 되던 해 가야산 해인사에 입산 출가, 당대의 선지식 제산화상(霽山和尙)을 은사로 한암(方漢)스님을 계사(戒師)로 득도수계, 상언(祥彦)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교학을 두루 이수한 후, 제방의 여러 선지식을 친견하며 수행정진을 계속했다.
당시 오대산 한암선사, 금강산 마하연 석우선사, 덕숭산 정혜사 만공선사 등의 회하(會下)에서 수행정진 했으며, 안변 석왕사 내원선원에서 혜월선사를 모시고 지내며 크게 심요(心要)를 얻었다.
이후 선기를 드날리며 정진하던 중 지리산에서 용성선사를 친견하고 선사의 “반야(般若)의 공리(空理)는 정안(正眼)으로 봄이라”는 말씀에 깨침이 있어 거량(擧揚)했다. 용성선사께서 “선재(善哉)라! 만고풍월(萬古風月)이로다”하며 고암당(古庵堂)이라는 법호를 내렸다.
1967년에 대한불교 조계종 제3대 종정에 추대 됐으며, 1970년엔 해인총림방장을 겸임하며 천하납자를 제접했다. 1972년에 제4대 종정에 재임했고, 78년엔 다시 제6대 종정에 취임, 교단발전을 위해 많은 일들을 했다. 1988년 10월25일 열반에 들었다.
4. 한암대원스님은 어떤 분인가
1942년 3월13일 태어난 대원스님은 1957년 16세 되던 해 상주 남장사로 출가했다. 남장사에서 당대 선지식인 고암스님을 은사(恩師)로, 동산스님을 계사로 득도했으며, 20세에 동산스님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수지(受持)했다. 출가 후 고봉스님으로부터 사집을, 통도사 성능스님.호경스님에게서 사교를, 혼해스님에게 대교를 각각 수학, 1966년경 일대시교를 이수했다.
1966년 남장사에서 혼해스님을 모시고 선어록과 〈금강경〉 강의를 듣고 용맹정진 중, 혼해스님이 “전백장(前百丈)은 불락인과(不落因果)라 해 야호(野狐) 몸에 떨어졌고, 후백장(後百丈)은 불매인과(不昧因果)라 답(答)하여 야호 몸을 벗어나게 했는데, 불락인과(不落因果)라 답했는데 왜 야호 몸으로 떨어졌는가”하고 물었다.
이에 망연자실 3일이 지나가는 것도 알지 못하다 혼해스님이 다시 큰소리로 “사자(獅子)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외치자, 홀연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 길로 곧장 의정부 쌍룡사 전강스님을 찾아뵙고 경책을 받았다. 이후 오대산 상원사, 도봉산 망월사, 대구 동화사 등지에서 안거(安居)하며 효봉.동산.고암.경봉.전강.향곡.성철.구산.월산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을 모시고 오로지 선 수행으로 일관했다.
1973년 고암스님이 해인총림 방장으로 머물 때 저녁 정진을 마치고 방장실을 찾아 공부에 대하여 몇 말씀 여쭈었다. 당시 고암스님이 마조원상 공안(公案)과 1700공안을 두루 묻기에 즉시 대답했다. “오도송(悟道頌) 일구(一句)를 가져오라”는 말씀에 곧바로 오도송을 지어 바쳤다. 오도송을 본 고암스님이 흔연히 입실을 허락하고 학산(鶴山)이라는 법호(法號)와 전법게(傳法偈)를 내리셨다.
1986년도 서울 대각사에서 대중을 모아놓고 정식으로 전법의식을 거행했다. 고암스님은 법장(法杖)과 불자(拂子), 가사와 발우를 신표로 전했다. 용성 - 고암 - 학산으로 이어지는 법맥이 꿈틀거리는 순간이었다. 88년 고암스님이 입적하시자, 고암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계룡산에 소실된 옛 제석사 터에 학림사를 창건했다. 1995년 오등선원(五燈禪院) 낙성식 때 조실로 추대, 현재 스님들과 일반 시민들의 참선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주 소 :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514번지 계룡산 장군봉하
전 화 : (042)825-1724, 6505 전 송 : (042)825-0515
홈페이지 : www.odze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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