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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두암 현기대선사 임종게

선사선담

by 노하시원 2025. 3. 2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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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두암 현기스님 2025년 3월 20일 새벽 입적. 지리산에서 혜암스님과 정진 중 지리산 반야봉에 매료되어 불출수행하심.

임종게

마음 달이 야반 삼경에
무주 고원에 떠오르고
달빛은 철문을 두드릴 때
동산을 머리에 이고
물 위를 지나간다.
불기 2569년 3월 20일
무주 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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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들의 즉문즉설 지리산 상무주암 현기스님
- 2016 간화선 대법회
선사들의 즉문즉설
지리산 상무주암 수좌 두암 현기대선사


배고프면 밥 먹고 목 마르면 물 마시는 게 부처" / 현기스님

출처: 불교신문

간화선 중흥을 위한 대선사 법회중계 - 지리산 상무주암 수좌 현기스님

청산백운 불리불합(靑山白雲 不離不合).
백운은 청산을 떠나있는 것도 뭉쳐있는 것도 아니고,
청산이 백운을 떠나있는 것도 뭉쳐있는 것도 아니다.

대중은 청산이고 저는 백운입니다.
제가 청산이라면 여러분은 백운입니다.

이러한 불리불합의 관계. 이 인연의 연기성(緣起性)은 만겁에 영원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염송(拈頌)>이란 책이 있습니다.
맨 앞의 말씀이 ‘세존이 도솔천을 여의지 않으시고, 왕궁에 내려오시다.

모태에서 나시기 전에, 중생을 다 제도해 마치셨다’입니다.
도솔천과 왕궁 사이엔 공간적 거리가 있습니다.
또한 ‘모태에서 나기 전’과 ‘중생을 다 제도했다’ 사이엔
시간적 거리가 있으므로, 상식적인 시각에선 모순이 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육식(六識) 경계로 보면 공간과 시간의 간격이 있지만,
원래는 그 간격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 무처무시(無處無時)입니다.

자타 사이의 간격이 공간입니다.
자타의 간격이 벌어지는 이유는 밖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육식(六識) 육근(六根)의 경계는,
뒤돌아 거슬러 올라가면 공간의 간격이 없어집니다.

예컨대 하늘에 떠 있는 강에 비치면
1000개의 달이 강물에 형상으로 비칩니다.
1000개의 달이란 숫자가 바로 공간입니다.
그러나 강물에 비친 달은 그림자일 뿐입니다.

하늘에 달이 있으면 따라서 나타나고,
달이 없어지면 달그림자 역시 사라지고 맙니다.
이와 같이 밖으로 보이는 산하대지 전체가 본래는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면 꿈속의 영상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처럼.
이러한 환유(幻幽)가 사라지는 게 반야(般若)이고 정안(淨眼)입니다.

정안이란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관자재보살의 ‘비춤’입니다.
깨달음이란 꿈에서 깨어 눈을 뜨는 일입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면 생멸육도(生滅六道)가 일어나고,
한 생각 깨달으면 생멸육도가 사라집니다. 생멸육도가 사라지면 평상심입니다.

지금 이 자리의 성성함.
두 눈이 있어 보고, 두 귀가 있어 듣고
앉고자 하면 앉고, 서고자 하면 서고.
돌아서면 번뇌가 바로 끊어지는 게 부처의 자리입니다.

https://youtube.com/watch?v=120hjxQPRr8&si=iwLfL70ffIqy3N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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