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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 전강선사 몽산법어 시고원상인

선사선담

by 노하시원 2025. 4. 30.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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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산법어 몽산화상시고원상인(蒙山和尙示古原上人) 몽산화상이 고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용화선원 전강선사(No.259)

 

 

송탑명산우(松榻鳴山雨)허고  

방인영낙매(傍人詠落梅)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장춘몽파(一場春夢罷)허고  

시자점다래(侍者點茶來)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송탑(松榻)에서 산우(山雨)는 우는데,

솔밭 꽉 찬 데서 비가 주루루루 떨어지니,

솔냉기(소나무)가 모도 그 빗소리에 운다 말이여.

방인(傍人)은 영락매(詠落梅)로구나.

곁에 사람은 매화시(梅花詩)를 지어서 읊으는구나.

일장춘몽파(一場春夢罷)하니,

꿈을 한번 척 깨고, 꿈에 꿈에 그랬든 것이여.

한번 공부하다가 잠깐 조는 동안에 산비는 와서

솔냉기는 빗소리에 모도 야단들인데,

옆에 사람은 매화시를 짓고 있어.

꿈을 한번 턱! 깨고 나니까 시자(侍者)가 차를 가져왔구나.

() 한잔 잡수십시오갖다 드린 바람에 대오(大悟)를 해 버렸다.

그대로가 말후구(末後句).

 

공부를 이렇게 해 들어가다가 경계를 당해서,

그저 밥 먹다가도 툭 깨고, 반찬 집어서 입에 넣다가도 툭 깨고,

가다오다 가도 툭 깨버리고, 이런 거여.

활구선(活句禪)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여.

안 깨고는 안 되아. 깨는 법이지

 

안 깨고는 아무리 공안(公案)을 천 공안, 만 공안을 다 알아도,

거 알았지 깬 것이 아니여. 알아만 놓았지,

알아 놓은 그것이 글 배워서 아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아무 소용이 없어.

 

생사(生死)에 필요가 있어야지. 어디 조금도 무슨 효과가 없다 그말이여.

그러니 지지일자(知之一字)가 중화지문(衆禍之門)이니라아는 것으로는 중화(衆禍)의 문()이여.

모도 생사 끝, 생사고(生死苦) 밖에는 안 되아.

생사거리 밖에는 된 거 아니여.

망상 번뇌나 생사 그거 밖에는 된 것이 아니여.

 

그러허니 화두를 몹시 기가 맥히게 다뤄서,

안 되고 또 안 되더라도 안된 놈을 추켜들고 또 허고 또 허고,

그저 그놈만 들입다 파 뒤집어 연속해서 해 나가면은,

거기에서 모도 그만 그 자취 없이 일어나던 망념이 다 죽어.

망념이 다 거그서 제대로 다 죽어부러, 없어.

화두 하나만 달랑 남아.

 

필경 그래 가지고는 화두 그놈은 의심이 파()하지,

안 파할 이치가 없거든.

그러니까 화두를 등한(等閒)히 말아라.

 

어떻게 해야 하냐?

자연현전시(自然現前時)에는 화두가 제대로 현전할 때에는,

제대로 현전해. 그걸 할라고 해서 현전도 아니요,

억지로 무슨 쌩화두를 들라고 해도 현전이 아니요,

현전을 만들라고 해도 현전이 아니여.

화두가 저절로 현전시절(現前時節)이 오느니라.

 

애만 써 봐라. 그저 화두를 들고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잘 다루어

거각(擧却)해 나가면은 망념이 붙지 못한 곳에서 제대로 현전한 때가 와

 

여시지시(如是之時), 이와 같이 화두가 될 때에 공부를 득력(得力)이라 한다.

그걸 득력이라 해.

억지로 무슨 맨들라고, 억지로 그놈을 추켜들어 가지고는 의심을 따로 맨들라고?

알 수 없는 것뿐인데, 뭘 만들어 만들기는.

 

! ‘이뭣고?’가 그대로 모르지, 어디 아는가?

이뭣고?’해 보지! 그만 모르는 놈뿐이지.

어디 아는 게, 뭐 어디서 생겨나?

무슨 거기에 소집(所執)이 있을 것이여.

알 수 없는 놈 하나 나와 가지고는,

그 처음이니까 알 수 없는 놈 하나 했다가는 금방 없어지고 딴 놈이 들어와서,

또 그놈 꺼져 버리고 또 멸해 버리고 또 딴 놈이 들어오고,

밤낮 그놈 망념(妄念)이 갈아들고, 그저 이놈 나오고 저놈 나오고

그저 별 생각이 다 나오고.

그놈을 그저 그것 나오거나 말거나, 뭔 망념이 어디서 제가 뭐...

내비두어 버려. 그 같은 건 나오건 말건.

 

그러니 이뭣고?’만 챙겨. 이뭣고?’가 그만...

판치생모(板齒生毛)만 찾어

필경 '판치생모'는 조주(趙州) 뜻이니까.

일체 공안이 다, 그 공안이 큰스님네 뜻이여

딱 맨들어 놨으니,

낙처(落處)는 천 공안이나 만 공안이나 깨달라 놓고 보면 똑같어.

그 낙처에 가서는 다른 법이 없어.

 

생사 없는 법 하나밖에 없지마는

경계에 따라 말이 다 다르거든

다르나 그냥 확철대오 해버리면 암만 달리 해 놨어도

아무리 중생이 모두 중생견(衆生見)으로는 찾아볼래야 도저히 볼 수 없어.

 

! 깨서 중생견이 툭 절단(切斷)나 버린 뒤에사 그놈이 보이는 것이여.

뻘로 그 좀 깨달랐다, ‘알았다, 요러고 대들어.

알았다했으니, ‘아니라고 하면은 아닌 줄 알아야지. 빡빡 우기고 대들어?

고런 걸 뭣 할 것이여 그거.

아니니깐 아니다 하는 것인데,

벌써 세우고 대들고. 그것 참!

 

이렇게 현전(現前)된 것을 공부(工夫) 득력(得力)이라고 한다.

공부 득력 되었을 때, 화두(話頭)가 순일(純一)해서

그대로 참 제대로 화두가 그만 불거자거(不擧自擧)가 되었을 때 

각요호지차개염두(卻要護持此箇念頭)해라.

문득 이 낱 염두(念頭)를 호지(護持)해라.

그 말은 저절로 화두가 자꾸 되어서 의심이 똑 불무더기 같이 일어날 때,

다른 마음 조금도 없이 화두만 온전히 일어날 때,

그럴 때에 그 염두(念頭)화두 그렇게 잘 일어나는 그 지경을,

화두를보호를 해서 가져라. 잘 가져라.

 

자꾸 속념(續念)을 해, ()을 일으켜서.

거그 조금만 잘된다고만 방념(放念)하면 못쓴다.

화두를 잘 가져라

 

상상상속(常常相續)해라.

항상 항상 서로이게 또 하고, 또 하고,

또 한 말 같지마는 참 무섭게 화두 간택해 준 말이여.

상상상속(常常相續)해라.

항상 항상 화두를 상속(相續)을 해라.

알 수 없는 놈이 조금도 떨어지지 않게.

조금만 떨어져도 그 못쓴다.

그럴 때에는 아주 그 번뇌 망념이 더욱 들어오기 쉬워.

항상 항상 상속을 해라. 참 거 좋은 말이지.

 

어좌중(於坐中)에 갱가정력(更加定力)이니라.

앉어서 공부하는데, 좀 앉었는데서 더 정력(定力)이 오느니라.

앉어서 그래도 해야 화두가 잡히고 자리가 잡히고 정력(定力)이 오지.

안 앉고 돌아댕기고, 조금만 해도 홱 일어나고,

그저 더웁다고 홱 일어나고, 그저 그렇게 경()해서는,

공부해 나가는데 그 경()해서는 안되느니라.

 

다섯 시간을 결정하고 앉어서 그 더위를 더운 줄 몰랐어.

참말로 더위를 몰랐어. 내가 이거 실지여!

더웁다고 밤낮 그저 그만 쪼끔 났다 쪼끔 갔다 왔다갔다 왔다갔다.

거 훨씬 더 더웁고, 화두는 도망가고 없고, 화두 살림살이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어.

조금 더웁드래도 참고, 아무리 땀이 흐르드래도 좀 참고 닦아 가면서라도,

자리에 좀 앉어서 갱가정력(更加定力)할 것이다.

내가 어저께 지켜봤다 그만 한번 해 봤구만나도 더위를 못 견디다가.

 

어좌중(於坐中)에 갱가정력(更加定力)이다

앉는 가운데에서 화두라는 것은 정력(定力)이 온다. 자리가 잡혀.

정력이 다른 게 아니라, 자리가 잡힌 것은 화두가 자꾸 연속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진다 그말이여. 화두의심이 난다 그말이여.

 

정력이 다른 게 아니여. 화두 없이 정력이 어디 있어?

화두가 의심이 그저 일어나면서 도망가지 않는 것을 정력이라 해야.

 

상자(相資)니라. 정력(定力)이 그놈이 자루가 되어,

딱 붙어가 되어, 딱 있어야 된다.

날라댕기는 짐승도, 굼벵이가 되어 가지고는

굼벵이가 몇 달 가만히 그놈이 들어가서 먹도 않고,

그 갑() 속에 들어앉어서 꼼짝도 않고 있다가,

그놈이 거기서 툭 트고 나비가 되어 나오고, 날개를 그놈이 훌훌 나는

그러한 그 신통구(神通具)를 이 몸뚱이서 갖춰 가지고 나온다 그말이여.

 

우리 참선도 역시 중생이 부처 되는 지경인데,

거기서 한번 정력이 있어 가지고 한번 바로 깨지 못하고 되아?

아무 때나 좀 공부하다가 될 것 같으면 세상에 그 뭐..

 

상자(相資)니라. 그렇게 서로 상자가 되어야

정력이 되어 가지고 딱! 그 정력이 요동이 없어야사 위묘(爲妙)니라.

()에 묘()가 된다. 그게 참 도묘(道妙)

 

홀연축착합착(忽然築着磕着)이니라.

홀연히 맷돌 맞듯, 대쪽 맞듯 할 것이다.

맷돌이라는 것이 하나 가지고 되나? 밑에 돌, 윗돌 그놈 갖다 딱 합하면은

고놈이 한데 딱 합해져야 거다 뭘 넣고 갈지고렇게 딱 맞아지고.

대쪽 맞듯 할 것이니라.

대쪽을 쪼개 놓았는데 쪼갠 놈 갖다 그대로 맞춰야 딱 맞지,

딴 쪽은 안 맞지? 제대로 쪼개 논 놈 제대로 갖다 딱 맞추면은 딱 맞지.

 

공안(公案)이 요렇게 탁 탁 깨달라지면은

저절로 맞아져 부러. 요럴 때가 오느니라

심로(心路)가 일단(一斷)하면은 그때에사 심로가 끊어진다

중생로(衆生路)가 끊어져.

중생 그 번뇌 망념길이 끊어져. 그놈의 번뇌 망념길이,

 

우리 중생의 번뇌 망념길이 끊어질 때가 있어? 끊어질 때가 있어?

졸고 앉아서 듣는 것 좀 봐라. 졸면 법문이 들어가나?

옆을 쳐다보지 마라. 즈그가 졸고 앉어서 옆 쳐다보니라고.

졸고 앉아서 법문이 들어가냐 그말이여. 눈을 뚝 뜨고 듣지 눈을 감고 듣지 말어.

 

화두 법문이여. 화두 법문! 화두 법문을 들어야 해.

누가 화두 법문을 할 거여?

화두 법문 할라면 내놔 봐, 할 사람 있는가?

화두 법문참선에는 화두 법문이 그만이여.

낱낱이 화두 법문 와서 대문대문(大文大文) 하라고 해 봐.

뭐 뭐 내 떨어놓고 말해.

한국에 누가 와서 할 사람이 있는가 해 보란 말이여.

내 이 자리에서 보면은 인자 엣따, 자기만 그런 소리 하는가 보다고 그럴 사람도 있어.

누가 못해? 아무 때나 할라면 다 하지.

 

심로(心路)가 일단(一斷)이다.

심로가 한번 턱! 끊어진 곳에 중생의 버르정머리 절단 나버리는 것이여.

중생의 버르정머리는 심로여, 마음길이여, 번뇌 망상길 밖에 없어.

 

잠자면 꿈꾸고어쩌다 꿈 없을 때 있지마는,

잠자면서 꿈꾼 것이 생전에 그 모도 하던 버르정머리

그게 꿈에 나타나는 것이지. 만날 꿈뿐이여.

어쩌다 꿈 없는 지경이 있지.

꿈 없는 지경은 그 뭐이냐 하면 제8식장(第八識藏),

근본무명 식장이여 그것이.

 

심로(心路)가 제대로 끊어진다. 처꺽 한번 뒤집어 버린다.

변유대오(便有大悟)그때 가서 대오가 있다.

바로 깨달은 대오가 거기에 바로 그대로 갖춰져 있어.

뭐 딴 데 있는 거 아니다. 대오니라.

 

오료(悟了), 깨달아 마친 뒤에는

갱문사건(更問事件)이 있어. 다시 무슨 사건이 있어.

갱문사건은 뭣이냐?

다시 오후사건(悟後事件)을 물어야 한다.

다시 오후(悟後)에 인자 그때 가서 정말 스님을 찾아야 한다.

깨달은 뒤에도 참으로 옳은 스승을 바로 찾아야 해.

 

다시 오후사건(悟後事件)을 물어라.

오후사건이란 게 참 무섭다.

제가 깨달라 가지고는 설사 옳게 깨달랐다 하드래도

깨달라 가지고는 공안에 탁마(琢磨)가 없으면 안돼.

 

탁마라는 것이 거기에 중대한 것이여. 조끔만 잘못되어도 그 안돼.

그러니 오후(悟後)에 탁마가 있으니,

오후에 그 탁마(琢磨) 다시 그 사건을 물어서

조금이라도 걸림이 있으면은 처꺽 다 떼어 주면,

그때 가서는 바로 보았으니깐 하나도 걸림이 없거든.

 

그런 것 탁마 못하고, 자기 혼자 무슨 하나 깨달랐다고

그까짓 것 가지고 학자 앉아서 가르킨다고 했자

모도 잘못 가르키는 수가 있거든.

 

그래 조주 스님 같은 이도

여태 마복(馬腹)을 세 번 면치 못했다고.

바로 보지 못하고 남을 일러줬다 그말이여.

바로 보지 못하고, 바로 탁마가 없이 남을 바로 일러줘 놓고는 큰일이거든.

 

그 전백장(前百丈)도 말 한마디 일러주어 놓고는,

뭐 잘못 일러주었나? 바로 일러주었지.

대수행인(大修行人)이 불락인과야무(不落因果也無)이까?

큰 수행인이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불락인과(不落因果)니라. 인과(因果)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그 인과에 떨어지지 않지, 뭐 인과에 떨어질게 뭐 있나?

무슨 인과에 떨어져. 소가 되고 말이 된다 한들.

 

위산(潙山) 스님은

내가 죽은 뒤에는, 시주것을 많이 먹고 내가 여태까지 살았으니

시주 은혜를 갚을라니 할 수 없어

내가 시주 집에 가서 농우(農牛)가 되어,

시주 집에 가서 큰 농사 짓는 소가 되어 가지고,

협하서자(脇下書字),

갈빗대 밑으로는 위산승(潙山僧)’이라 쓰고,

대갈빡에는 뿔을 이고 나올 것이니라그랬다 그말이여.

 

위산 스님 같은 그러한 큰스님이,

내가 죽은 뒤에는 산하(山下)에 그 시주 집에 가서 내가 시주것을 많이 먹었으니 시주 집에 가서 큰 농우가 농사짓는 소가 되어가지고 오되이마빡에는 뿔따구를 뒤집어쓰고 갈빗대 밑에는 위산승이라 써 가지고 나올 것이다

그래 안 했어?

낱낱 갚지, 안 갚아? 시주 은혜를 안 갚은 줄 알어?

 

도만 닦으면 안 갚은 줄 알어?

도 닦아 가지고 견성해 가지고는 더 갚는 법이여.

낱낱이 갚는 법이여.

 

위산승(潙山僧)이라고 할 것 같으면은 소가 아니고,

소라고 할 것 같으면 위산승이 아니니,

너희가 한마디씩 일러 봐라그 기가 맥힌 공안 아니냐 그말이여.

갱문오후사건(更問悟後事件)을 해라

 

-용화선원 법문듣기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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