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는 알고 모르는 데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미혹을 가지고 깨닫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버리고 내 말을 들어라. 모든 법은 꿈과 같고 또 허깨비와 같다. 그러므로 망령된 생각은 본래 고요하고, 티끌과 같은 경계는 본래 실체가 없다. 모든 존재가 다 실체가 없는 곳에 신령한 앎이 어둡지 않나니, 이 비고 고요하며 신령한 앎(공적영지)이 바로 그대의 본래 면목이며, 또한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와 선지식이 비밀히 서로 전한 법인이다.
만약 이 마음만 깨달으면 진실로 이른바 단계를 밟지 않고 바로 부처의 지위에 올라 걸음마다 삼계를 뛰어넘고 집에 돌아가 단박에 의심을 끊게 된다. 인간과 천상계의 스승이 되고 자비와 지혜가 서로 돕고 자리와 이타를 모두 갖추어, 인간과 천상계의 공양을 받되 하루에 만 냥의 황금을 소비할 것이다. 그대가 만약 이와 같으면 참다운 대장부이니 일생의 할 일을 다 마친 것이다.
그대가 지금 내게 묻는 그것이 바로 그대의 비고 고요하며 신령한 앎인데, 왜 돌이켜보지 않고 아직도 밖에서 찾는가? 내가 이제 그대의 분수에 의거하여 본래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그대가 문득 깨닫게 할 터이니, 그대는 마음을 깨끗이 하여 내 말을 들어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십사 시간 동안 보고 듣고 웃고 말하고 성내고 기뻐하고, 옳다고 하고 그르다고 하는 갖가지 행동과 운전은 결국 무엇이 그렇게 운전하고 행동하도록 하는가 말하여 보라.
만약 몸뚱이가 운전한다면, 무슨 까닭으로 어떤 사람이 한 번 목숨이 끊어지면 몸은 채 허물어지거나 썩지 않았는데도 눈은 보지 못하고, 귀는 듣지 못하고, 코는 냄새를 맡지 못하고, 혀는 말하지 못하고,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손은 쥐지 못하고, 발은 걷지 못하는가? 이로써 보고 듣고 동작하는 것은 반드시 그대의 본래 마음이지 그대의 몸뚱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물며 이 몸뚱이를 이루고 있는 사대는 그 성품이 실체가 없어서, 마치 거울 속에 비친 그림자와 같고 물 속에 비친 달과 같은데 어찌 능히 항상 분명히 알며, 밝디밝고 어둡지 않아 느끼는 대로 갠지스강의 모래알같이 수많은 미묘한 작용을 통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옛사람이 '신통과 묘용이여, 물을 긷고 나무를 나르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또 이치에 들어가는 길은 많으나 그대에게 한 문을 가리켜 그대가 근원에 돌아가게 하겠다. 그대는 까마귀 우는 소리나 까치의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가? (네. 듣습니다.) 그대는 그대의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들어 보아라. 거기에 과연 수많은 소리가 있는가? (그 속에 이르러서는 온갖 소리와 분별을 도무지 얻을 수 없습니다.) 기특하고 기특하구나. 이것이야말로 관음보살이 이치에 들어간 문이다. 내가 다시 그대에게 묻겠다. 그대는 이르기를 '그 속에 이르러서는 온갖 소리와 분별을 도무지 얻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미 얻을 수 없다면 그런 때에는 그것은 허공이 아닌가? (원래 비지 않고 밝디밝아 어둡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비지 않은 것의 본체인가? (모양이 없으므로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부처님과 조사님들의 생명이니 다시는 의심하지 말라. 이미 모양이 없는데 다시 크고 작음이 있겠으며, 크고 작음이 없는데 어찌 한계가 있겠는가? ...
모든 존재가 다 실체가 없는 곳에 신령한 앎이 어둡지 않아, 무정물과 달리 성품이 스스로 신령스럽게 안다. 이것이 바로 그대의 비고 고요하며 신령한 앎인 청정한 마음의 본체이다. 이 청정하고 비고 고요한 마음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수승하고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며, 또한 중생의 근본인 깨달음의 성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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