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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거울" 중에서 - 선가구감. 서산대사 지음, 법정스님 옮김

선사선담

by 노하시원 2019. 11. 12.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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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거울" 중에서 - 선가구감. 서산대사 지음, 법정스님 옮김



15. 일상생활 중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든지 오직 "어째서 개한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라고한 화두를 끊임없이 들어, 이치의 길이 끊어지고 뜻 길이 사라져 아무 맛도 없어지고 마음이 답답할 때가 바로 그 사람의 몸과 목숨을 내던질 곳이며, 또한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될 대목이다.


->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도 부처의 성품이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조주스님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 한마디는 우리 종문의 한 관문이며, 온갖 못된 지견과 그릇된 알음알이를 꺾어버린 연장이며, 또한 모든 부처님의 면목이고 조사들의 골수다. 이 관문을 뚫고 나간 후에라야 부처나 조사가 될 수 있다. 옛 어른은 이렇게 읊었다.


조주의 무서운 칼

서릿발처럼 번쩍이네

무어라 물을 텐가

몸뚱이가 두 동강 나리.



16. 화두는 들어 일으키는 곳에서 알아맞히려 하지도 말고, 생각으로 헤아리지도 말라. 또한 꺠닫기를 기다리지도 말고 더 생각할 수 없는 데까지 나아가 생각하면 마음이 더 갈 곳이 없어, 마치 늙은 쥐가 쇠뿔 속으로 들어가다가 잡히듯 할 것이다. 이런가 저런가 따지고 맞춰 보는 것이 식정이며, 생사를 따라 굴러다니는 것이 식정이며, 무서워하고 갈팡질팡하는 것도 또한 식정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 병통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 속에서 빠졌다 솟았다 하고 있을 뿐이다.


-> 화두를 참구하는 데에 열 가지 병이 있다. 분별로써 헤아리는 것과, 눈썹을 오르내리고 눈을 끔적거리는 곳을 붙잡고 있는 것과, 말 길에서 살림살이를 짓는 것과, 글에서 끌어다 증거를 삼으려는 것과, 들어 일으키는 곳에서 알아맞히려는 것과,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리고 일 없는 곳에 들어앉아 있는 것과, 있다는 것이나 없다는 것으로 아는 것과, 참으로 없다는 것으로 아는 것과, 도리가 그렇거니 하는 알음알이를 짓는 것과, 조급하게 깨치기를 기다리는 것 들이다. 이 열 가지 병을 여의고 오직 화두만 들 때 정신을 차려 "무슨 뜻일까?"하고만 의심할 일이다.






17.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드는 것과 같아서 함부로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떼어놓고 한번 뚫어보면 몸뚱이째 들어갈 것이다.


-> 위에 말한 뜻을 거듭 다져 '산 말'을 참구하는 이에게 뒷걸음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옛 어른이 이르기를 "참선은 조사관을 뚫어야 하고, 오묘한 깨침은 마음 길을 끊어야 한다"고 했다.



18. 공부는 거문고 줄을 고드듯이 하여 팽팽하고 늦음이 알맞아야 한다. 너무 애쓰면 집착하기 쉽고 잊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지게 된다. 성성하고 역력하게 하면서도 차근차근 끊임없이 해야 한다.


-> 거문고 타는 사람이 말하기를, 그 줄의 늦고 팽팽함이 알맞아야 아름다운 소리가 잘 난다고 한다. 공부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조급히 하면 혈기를 올리게 될 것이고, 잊어버리면 흐리멍텅해서 귀신의 굴로 들어가게 된다.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되면 오묘한 이치가 그 속에 있을 것이다.






19. 공부가 걸어가면서도 걷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는 줄 모르게 되면, 이때 팔만사천 마군의 무리가 육근 문 앞에 지키고 있다가 마음을 따라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슨 상관이 있으랴.


-> 마군이란 생사를 좋아하는 귀신의 이름이고,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는 본래 씨가 없는 것인데 수행자가 바른 생각을 잃는 데서 그 움이 트게 된다. 중생들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수행인은 그 환경에 거슬리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억세어 간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서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붙잡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된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마의 여러가지 재주일지라도 마치 칼로 물을 배려거나 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했다. 




20. 일어나는 마음은 천마이고, 일지 않는 마음은 음마이며, 일기도 하고 일지 않기도 하는 것은 번뇌마이다. 그러나 우리 바른 법 가운데에는 본래 그런 일이 없다.


-> 대체로 무심한 것이 불도이고 분별하는 것은 마의 일이다. 마의 일이란 꿈 속 일인데 더 길게 말할 것이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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