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건 어렵지 아니한 데서 나왔다. 반야바라밀이 반야바라밀이 아닌데, 아닌데서 이름하여 반야바라밀이 나왔다는 것과 같다. 어렵지 않은 데서 어려운 것이 나왔다면, 어렵다 할 때, 어렵지 않은 것을 왜 바로 못 보느냐? 본래부터 어려운 사람이라면 태어나면서부터 "아이고! 아이고!" 맨날 이래야 될 거 아닌가? 그래서 어려움에서 어렵지 않는 것을 척 바로 보니까, 어려움 자체가 본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하는 자체가 즐겁다는 거다. 내가 괜히 어렵다 하는데 떨어져 빠져서 따라가서 그렇지. 마찬가지로, 괴롭다 할 때, 괴롭지 않는 것에서 괴로운 것이 나온 거다. 아는 건 모르는 데서 나온 거다. 그러니까 모르는 것이 아는 것의 아버지다. 모르는 게 오면 오면 모르는 줄도 알고, 아는 게 오면 아는 줄도 알고, 다 안다. 아는 건 모르는 데서 나온 거다. 그래서 지식이라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지식의 아버지가 무식이다. 있는 건 없는 데서 나온 거다. 없는 걸 돌이켜서 실체를 보니, 없다는 자체도 본래 본래 있는 바가 없이 공했다는 거다. 자꾸 파고 들어가 보면 그렇다. 그렇게 해서 깨달으면 일체 모든 사람들과 만법을 확연히 거울처럼 안다. 그래서 그 근기 따라서 비위를 맞춰주면서 그 사람을 잘 끌어들인다. 마음 쓰는 걸 잘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라는 자체는 본래 있는 놈인가, 없는 놈인가? 본래 어려운 물건인가, 어렵지 않은 물건인가? 그게 뭔가 그걸 알아야 된다.(2021. 1. 3. 소참법문 중에서) --------------------
나는 무엇일까 이건 내가 깊이깊이 생각해 봐서 알아야 할 일이지, 남이 해결해 줄 일이 아니다. 그걸 앉으나 서나 오나 가나 일을 하나 해야 된다. 과거에 그렇게 해서 깨달은 보살들이 많았다. 그걸 깊이 깊이 파고 들어가다 보면 어떨 때는 한 시간, 두 시간이 순간에 지나가고, 하루 해가 자나가는 것도 모를 때가 있다. 그렇게 돼야 된다. 아침에 시장에 장보러 가다가 정신차려보면 엄한 데서 서있는데, 저녁 해가 넘어 가더라는 거다. 그걸 맛을 보고 나서는 '희귀한 일이다. 내가 그냥 서 있었으면 두 시간도 못 서 있었을 텐데. 아하!' 하고 손뼉을 쳤다는 거다. 열심히 꼭 해야 된다. 그게 생명이다. 그거 하나를 잊어버리면 죽은 사람이고, 그거 하나를 항상 역력히 명심해 챙기고 살면 정말 가치있는 멋진 인생을 사는 거다. (2021. 1. 17. 소참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