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자를 세 번 치고 들어 보이시고)
오늘 세계명상마을 개원식에 참석하신 시회 사부대중께서는 아시겠습니까?
종사가 자리에 오르기 전에 법문을 다 해 마쳤고, 이 자리에 계시는 대중께서 이 자리에 오시기 전에 이 법문을 다 들어 마쳤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린 것도 큰 허물이 적지 않습니다. 하물며, 이 자리에서 바로 알아서 계합해서 알았다고 한들, 또한 하늘과 땅 사이로 거리가 멉니다.
그렇다면, “나는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옳을까요? 그것 또한 담판한(擔板漢)을 면치 못하는 신세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알고 모르고 하는 양변을 다 여읜 사람입니다” 한다면 옳을까요? 그것 또한 평평한 땅에서 죽은 송장의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는 범부도 성인도 붙일 수가 없고, 마구니는 더구나 머리가 깨져서 천리나 달아나는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어떤 도리인지 한마디 일러줘야 되지 않습니까?” 한다면, 이것 또한 좋은 얼굴에다가 흠집을 내는 거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조사의 의지를 가지고 헤아려본다면 어떻겠습니까?” 한다면, 그것 또한 머리를 미해서 그림자를 아는 신세입니다.
그렇다면 필경에는 어떤 것이냐?
(잠시 묵묵한 후) 악!
눈썹을 아끼는 것이 좋습니다.
우주 가운데 가장 큰 보물이 있는데, 형산에 숨겨져 있다. 대중은 눈이 코 위에 있고 다리는 배 아래에 있으니 또 일러라. 그 보배가 어느 곳에 있느냐?
금일 대중께서 이 가운데 바로 이 보물을 알아 얻어간다면 오늘날 코로나와 전쟁과 같은 가정 국가 개개인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서 대행복, 대만족을 만끽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부처님으로부터 전법이 내려온 33조사 가운데 14조인 용수보살께서 정법안장을 전해줄 이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가나제바존자가 찾아온다는 말을 듣고 가나제바가 들어오는 문 앞에 물을 한 그릇 떠다 놓게 했습니다.
가나제바존자는 그 물그릇을 보고 호주머니에서 바늘을 꺼내서 물그릇에다 넣었습니다. 용수보살이 무릎을 치면서, “참으로 훌륭하도다! 물을 갖다 놓은 의지를 어떻게 알았는가?” 하고 가나제바에게 부처님의 정법안장을 전해 주시게 됩니다.
제가 여러군데 다니면서 ‘물은 왜 떠놨으며, 바늘을 왜 넣었는가? 그게 어떤 의지인가?’ 하고 물어 본 일도 많았습니다만, 오늘 이 자리에 계시는 여러분이 그 물을 떠놓은 의지와 바늘을 넣은 의지를 아신다면 여러분도 용수보살과 가나제바존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언어문자 이전에 서로 통해서 계합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선(禪)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물을 떠놓은 의지는 무엇이고, 바늘을 거기 넣은 의지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육육은 36이요, 구구는 81이라.
아시겠습니까?
인류가 역사 속에서 무한한 많은 문화들을 발전시켜 온 것은 살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삶이 무엇인지 알아야 대만족을 이루고 살아가게 됩니다. 생(生)을 배제하면 철학, 과학, 예술, 문화, 종교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 생이 존재하므로 모든 것이 다 존재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천차만별의 삶 중에서 어떤 삶이 가장 실다운 삶인가?
계학이만 인심난만(谿壑易滿 人心難滿)이라, 골짜기는 채우기 쉬우나 사람의 마음은 채우기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무수한 많은 것들이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 위하여 발전해 왔습니다.
남아프리카, 소말리아, 우간다에는 지금 빈곤 속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굶어죽는 이 사람들은 오직 식량과 물을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식량과 물이 풍부해서 배가 부르면 당분간은 마음이 편안하고 만족하게 되겠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순간의 만족은 없어지고, 다시 허전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최첨단 살상무기를 개발하여 오늘날 보듯이 전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1950, 60년대에는 전쟁 잿더미 속에서 굶어 죽는 고통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은 굶지 않고 생활이 그때 비해서 풍족하지만 여러분은 만족하십니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여 허전한 마음을 채우기 위하여 두리번거리고 무언가를 찾고 있지 않습니까? 소말리아, 남아프리카 국민이 기아에 허덕이듯이 여러분들이 정신적인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것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우리는 첨단과학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만족을 모르고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무수한 문화를 창조하며 살고 있는 속에서 마음의 만족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오늘 현실인 것입니다.
그런데, 대만족을 느끼고, 영원한 행복과 즐거움 속에서 살아가신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입니다. 부처님은 영원한 대만족, 영원한 대행복이 우주 천지를 찾아봐도 없어서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와서 자신이 무엇인지 낱낱이 파헤쳐서 보고 거기에 영원한 대만족, 영원한 편안함과 대행복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불성인 것입니다. 이것은 금강경에서는 ‘아뇩다라샴막삼보리’라고 했고, ‘무아, 무상, 무주’로 표현했습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여러분도 영원히 대만족을 누리고 사시려면 바로 자신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불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어떤 종교나 어떤 철학자도 이 불성을 깨닫는 방법을 내놓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을 내놓은 분이 부처님과 역대 조사스님이십니다. 바다를 건너려면 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듯이, 대만족을 누리고 살려면 불성을 찾는 방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참선인 것입니다. 그리고 선지식을 꼭 만나야 합니다.
오늘 개원한 이곳 세계명상마을이 바로 여러분의 고통을 없애 주고 대행복과 영원히 편안한 마음을 쓰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곳입니다
우리 중생의 혼탁한 의식의 공해를 맑히고 깨끗하고 밝은 불성으로 되돌아와서 영원한 생명, 영원한 빛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불성으로 살려면 자신의 불성을 확실히 깨달아 알아서 증득해야 하는데, 거기에는 방법이 대략 3가지가 있습니다. 관법과 묵조선과 간화선입니다.
관법은 기초적이면서도 과학적이라 많은 초학자들이 이 방법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 범위가 광범위하여 다 말씀드릴 수가 없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사념처관, 25유관법, 수식관, 부정관, 자비관 등을 위빠사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을 요약하면 주시, 느낌, 알아차림입니다. 이것은 가르쳐주는 선지식을 만나서 지도를 받아야 됩니다.
묵조선은 본래 청정한 근원의 불성을 돌이켜서 가만히 비추어보는 데 있습니다. 그걸 묵조선에서는 회광반조(廻光返照)라고 합니다. 이것 또한 여러 광범위한 내용이 많아서 시간상 다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간화선은 중생의 병을 고쳐서 즉시 바로 불성을 깨달아 아는 지름길입니다. 묘결이요 묘방이요 비방이 바로 화두입니다. 1700공안 중에 하나의 공안을 일구월심으로 참구하여 홀연히 심화(心花)가 돈발(頓發)하여 불조의 진리를 깨닫는다면 바로 천하 노화상의 혀끝에 속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스님이 조주스님께 물었습니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무(無)!”
그때 물었던 달정이라는 학인은 바로 불성을 깨달아서 요달했습니다. 오늘 그 무(無)라고 한 의지가 무엇인지 여러분이 바로 알아들으면 여러분이 조주스님과 다르지 않습니다. 말하기 전에 바로 보고 즉시 알아차리는 것이 깨달은 자의 행리처(行履處)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산승에게 만약 “개가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묻는다면, 저는 ‘무’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 묻는 학인을 한 대 때리고 “알겠느냐?” 하겠습니다.
만약 “모릅니다. 다시 일러주십시오” 한다면 부득이 그에게 제가 한마디 이르기를, “분퇴리월출(糞堆裏月出)이라 거름더미 속에서 달이 뜬다” 라고 하겠습니다.
금일 대중이여!
이 우주를 덮고도 남는 보배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희양산봉용부동(曦陽山峰聳不動)
봉암계성곡외류(鳳巖溪聲谷外流)
희양산 봉우리는 높이 솟아서 만고에 움직이지 않는데, 봉암계곡의 흐르는 물소리는 곡(谷) 밖으로 흐름이로다.
악!
(2022.04.20 제4회 간화선대법회 대원대종사 입재법어, 출처: 오등선원지대방, 편집 여산거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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