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봉선사의 "전삼삼 후삼삼(前三三 後三三)", 1968년 하안거 결제법어 중에서-
무착문희선사가 오대산에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갔다.
금강굴 앞에서 아무 것도 없고 굴만 있는데 향을 피우고 앉아 있는데 누가 소를 몰고 이럇하고 가는데 보니 노인이 가고 있었다.
무착선사가 인사를 하니
노인이 무착선사에게 물었다.
“밥 먹었나?”
무착선사가
“안 먹었습니다.”하였다.
밥 먹었느냐 그 때부터가 법어이다.
밥 먹었나 여기서부터가 법으로 묻는 것인데
안 먹었다고 하니 아이고 너를 데리고는 말할 것도 없다,
법으로 한 번 찔러 보았는데 먹었다 하니 그냥 지나간다.
노인이 그냥 가는데 무착선사가 그래도 공부한 눈치가 있어서 그 노인이 하는 동작이 남다른 데가 있어서 따라 갔다.
절에 들어가자 노인이 이리오너라 하자 동자가 나왔다.
그 이름이 균제(均提)동자다.
균제동자가 소를 메고 발을 씻기고
좋은 비단 방석을 내어 주고 앉으라고 하였다.
조금 있으니 균제동자가 파리잔에 차를 들고 왔다.
노인도 한 잔 주고 무착선사도 주었다.
먹어보니 소락제호라.
소락제호는 설산에 살면서 비니초를 먹고 사는 백우가 있는데 그 소의 젖으로 이 소락제호를 먹으면 보리를 이룬다고 한다. 소락제호 차를 마시니 몸과 정신이 아주 상쾌하다.
차를 다 먹은 뒤에
노인은 다시 파리로 된 찻잔을 들어 보이고
“남방에도 이러한 물건이 있느냐?”하고 물었다.
무착선사가
“남방에 그런 물건이 있겠습니까?”하고 답하였다.
노인이 파리잔으로 설법을 하는 것인데
무착이 아직 도가 넉넉하지 못하고 깜깜하여
그런 답을 한 것이다.
그러자 노인이 아무 말이 없었다.
아무 말이 없는 가운데 너는 아직 공부가 멀었다는 뜻을 추측할 수 있다.
비유하면 어리석은 개에게 흙덩이를 던지면
개는 흙덩이가 자신을 때린 줄 알고 흙덩이를 쫓아가는데
사자에게 던지면 사자는 흙덩이가 어디에 떨어지든지 사람이 던졌다고 사람을 문다.
그러니 지혜가 있고 도가 있고 법을 아는 사람은
뜻이 그 찻잔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도를 모르면 찻잔을 보고 거기에 속는다.
뜻은 따로 있다.
몰라서 엉뚱한 답을 하니 다른 것을 물었다.
노인이 다시 “어디로 왔나?”물으니
무착선사가 “남방으로 왔습니다.”한다.
이것도 안 된 것이다.
어디로 왔냐가 법으로 물은 법담인데
이 몸이 어디에 있는 줄 알고
남방으로 왔다고 하는 것은
십만팔천리나 틀린 말이다.
그 말을 따라서 또 묻기를
“남방의 불법은 어떻게 주해서 가지느냐?”하니
“말세 중생이 계율을 가지고 주재합니다.”라고 답했다.
이것도 법담인데 계율이나 경전을 읽거나
참선을 하는 것을 물은 것이 아닌데
자꾸 다른 답을 한다.
노인이 무착선사에게
“대중들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물으니
무착선사가
“혹 삼백 명도 되고 혹 오백 명도 됩니다.”라고 하였다.
노인이 산 말을 듣자는 것이지
누가 어디 죽은 말을 들으려고 한 것인가
그런데 무착선사가 자꾸 죽은 말을 한다.
그런 답을 들으려고 물은 것이 아니다.
다시 무착이 노인에게 물었다.
“이곳의 불법은 어떻습니까?”
노인이
“용과 뱀이 함께 있고 범부와 성인이 같이 산다[龍蛇混雜 凡聖同居].”고 하였다.
이것도 무슨 소리인지 깜깜하다.
곧 따라서 무착이
“대중들은 얼마나 됩니까?”물으니
노인이
“전삼삼 후삼삼(前三三 後三三)이라,
앞도 삼삼이요 뒤도 삼삼이다.”
라고 하는데 무착은 무슨 말인지 모른다.
해가 저물었고 하여 노인에게 물었다.
“하룻밤을 묵고 싶습니다.”
“집심이 있는 사람은 자고 갈 수 없다.”고 하였다.
“저는 집착하는 마음이 없습니다.”하였다.
조금 있다가 노인이 물었다.
“수계를 받았는가?”
“수계를 젊을 때 받아서 계를 가진지 오래입니다.”
“그것은 집심이 아니고 뭐냐?”
할 말이 없다.
이런 말이 계를 파하라는 말이 아니다.
계행를 지켜도 계행에 얽매이지 말라는 말이다.
집심이 없다고 답하여 그 지경이 되니
그것도 집심이라고 한 것이다.
잘못 들으면 파계하기 쉬우니 계는 꼭 지켜야 한다.
계를 가져도 닦아도 닦음이 없고
행해도 행함이 없어야 한다.
모든 집착이 없어야 한다.
무착이 못 잔다하니 쫓겨나온다.
무착이 못 자게 되자 균제동자가 가자고 당겨서
여기서는 못 있는다고 데리고 나온다.
할 수 없이 나왔다.
그런데 무착선사가 밥을 먹고 체한 것처럼
'전삼삼후삼삼' 거기에 딱 걸려버렸다.
무착이 동자에게 물었다.
“동자여. 대중 수요를 물음에
전삼삼 후삼삼이라 하니 그 무슨 이치냐?”
고 물었다.
그러자 동자가 “대덕아”하고 불렀다.
대덕이라는 것은 존칭이다.
무착이 “예”하고 대답하였다.
균제동자가 “이 수가 얼마나 되느냐?”하는데
무착은 아직도 몰랐다.
이것도 동자가 바로 일러 준 것인데
이것도 깜깜하다.
천리만리나 멀었다.
무착은 다시 물었다.
“동자여 나를 위하여 다시 쉽게 말해 주시오.”하였다.
그러자 동자의 말이
면상에 화냄이 없으면 공양구요
입 속에서 화냄이 없는 말이면 묘한 향을 토하는 것이다.
마음 가운데 화냄이 없으면 진보라 참보배다.
때도 없고 물들임도 없으면 이것이 진상이라 참되고 항상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은 조금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까 '전삼삼후삼삼'은 못 알아들었다.
돌아보니 절도 사람도 아무 것도 없다.
무착은 그제야 그 노인이 문수보살인 줄 알았다.
그래서 절을 향하여 무수배를 하였다.
다시 친견을 해달라고 무수배를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문수보살 친견 후에 앙산스님 회상에 가서 도를 알았다.
동지가 되어 무착스님이 동지팥죽을 쑤는데
팥죽에서 만문수가 기어 나온다.
무착스님은 팥죽 젓던 주걱으로 문수보살을
이리 치고 저리 치고 사정없이 후려쳤다.
“문수도 자문수요 무착도 자무착이라,
문수도 네 문수고 무착도 내 무착이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문수보살이 무착에게
“삼대겁(三大劫)을 너가 수행을 해가지고
노승의 혐의를 입었구나.” 했다.
그 말이 최후 경계를 최후 일로로,
향상 일로를 일러준 것이다.
“니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이 노승의 혐의를 입었다."
이 소리를 잘 알아야 한다.
뒤에 공부해가지고 해제 때 하나 물을 것이 있는데,
그 무착이 주걱을 가지고 만문수를
이리 치고 저리치고 쳤는데
이 만문수 중에 어떤 문수가 본 문수냐.
만문수 중에 본문수가 있을 터인데
본문수가 어떤 문수이냐 이 말이다.
공부해서 해제 때 답을 해보라.
(숭산선사도 해운정사 법당 안에 있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을 가리키면서 저기 천수에 있는 천안 중에 어떤 것이 진짜 눈이냐고 물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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