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을 빻으면 밀이 수천 개지만 밀가루가 돼서 밀가루에 물을 부어 반죽을 하면 하나가 되잖아요. 무엇이고 하면은 우주 만유 전체 한 뭉치라요. 이거 다르고 저거 다르고, 이게 뭔가 저게 뭔가 그런 게 아니고, 무엇인고 하면 우주만유가 한 뭉치예요. 다른 게 없고 한뭉치에서 묻는 거요. 무엇인가? 다 한뭉치로 뭉친 그게 뭐냐 물으면 뭐라고 해요? 무엇인고 하면은 우주 만유 한뭉치라. 여기 가서 뭐냐, 저게 뭐냐 그런 게 아니고 한뭉치여. 무엇이냐 하면 일체가 한 뭉치에서 딱 무너지는 거야. 한 뭉치가 무엇이냐. 수천 만 가지 모든 게 있지만, 밀을 빻으면 가루가 되고 가루에 물을 부우면 한뭉치가 되는 거야. 그거 가지고 수제비도 만들고 국수도 만들고 뭐도 만들면서 달라지지. 한 뭉치가 된 그걸 뭐라고 하느냐 이거지. 우주 만유의 창조의 요소가 색성향미촉법 오음의 요소가 하나로 뭉쳐졌는데, 그걸 한마디로 말해라. 뭐라고 하냐? 너는 뭐냐 이거라. 뭐냐 하면 그거를 해결해야지 딴 걸 뭘 해결해? 근데 딴말 할 게 뭐가 있어요? 아까도 자꾸 딴 말만 하던데. 허허. 뭐가 따로, 몸뚱이가 따로 있고, 또 아는 게 따로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말했잖아. 그게 아니잖아. 내가 얼마나 말을 많이 했어. 하나 된 이 한뭉치 전체를 놓고 이게 뭐냐 이럴 때, "나는 홍길동입니다" 하면 "어째서 홍길동이냐? 원래 홍길동이 아닌데 너는..." 얼마나 내가 얘기를 많이 해줬는데, 어떻게 해줘야 알아 듣겠어요? 뭘 이길로 저길로 가? 자꾸 뭘 헤매요? 참 나. 다른 게 필요 없고 뭐냐 하면 거기에 대한 걸 네가 바로 아느냐 몰랐느냐? 거기서 뭐 다른 생각할게 뭐 있어? 할 수가 없는데. 다른 생각 할 수도 없고 할 것도 없고, '무엇인가?' 하는 건데. 그럼 거기서 본인이 스스로 깨달을 뿐인데, 무엇인가 깨달아야 되고, 잣나무가 불성이 있습니까? 있다. 언제 성불을 합니까? 허공이 떨어질 때 기다려라. 그때 깨달아야 되요. 그거나 내내 똑같은 거야. '무엇인고' 하는 거나, '無' 하는 거나. 소가 안 갈 때는 수레를 때려야 됩니까, 소를 때려야 됩니까? 거기서 깨달아야 돼요. 거기서 깨닫지 못하고 또 '아이고 수레를 때려야 되나 소를 때려야 되나?' 이렇게 헤매면 안 된다는 거야. 수도 없이 해줬는데 그걸 다시 반복해서 저 밑에 내려가가지고. 이게 기가 차는 거야. 이래 저래 생각을 하고 사량분별을 하는 건 망상으로 떨어지는 거니까, 그건 따라가지 말고 항상 되돌려서 무엇일까 그것만 밀고나가라고 했잖아요. 이어진다는 생각조차도, 그런 관념 둘 것도 없고, 그 순간순간 포착을 해서 딱 다른 게 일어나면 그걸 따라갈 필요없이 바로 되돌려라.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걸 나는 대답해야 되는데 이 망상 일어난 건 대답이 아니잖아? 자기가 바라는 대답이 아닌데 거길 왜 따라가요? 나는 알았다면 모를까, 알지도 못하면서 뭔 딴 생각해? 딴 게 필요가 없는데. 딴 게 뭐가 필요 있어요? 아이 기가 찬거 아닌가. 본인이 당장 은행에 일억을 안 넣으면 집 전체가 다 날라가는데, 그 방법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느냐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딴 생각이 와 가지고 "오늘 한 잔 하고 놀지" 하면 거길 따라간다 그 소리라? 뭔 소리여? 기가 차는 거 아니야 그래. 그래서 조고각하(照顧脚下)하라는 말이 뭔 말이야? 잘 살펴라. 생각 일어나는데 따라가지 말고, 밥 먹는데 따라가지 말고, 잠자고 일어나고, 가고 오는데 떨어지지 말고, 항상 무엇인가 하는 그것 뿐이지. 그거 외에는 다른 생각 하는 건 다 그건 망상이니까 따라가지 말라고 내가 목이 터지도록 피가 나도록 이야기해줬는데도. 본인이 그렇게 안되면 열심히 노력을 해야지. 안 되는 걸 남이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는데. 남이 해줄 수만 있다면 컴퓨터에 입력하듯 쑥쑥 넣어주면 되는데 그건 해줄 수가 없는 물건인데. 자기 걸 자기가 해야지. 몸의 느낌이나 그런 건 일체 그런데 아무 관계 없어요. 항상 이놈이 무엇인가 했을 때, 내가 나에 대한 걸 한마디 확실하게 대답을 해야 되는데 무엇이냐? 뭐라고 해야 되느냐 이거지. 가나 오나 그것 뿐인데. 그런데 그 외에 딴 게 뭐가 필요있단 말이야 그래? 일상생활 속에서 나라고 하는 이놈이 무엇인지 모르니까 항상 돌이켜서 무엇인고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상생활하는 속에서 다른 거 없이 무엇인가? 밭을 매며 일하면서도 "요새는 어떻습니까?" 하니 "나는 풀하고 곡식을 모조리 다 맬때도 있고, 어떨 때는 가려서 맬때도 있다네." 거기서 다 드러내 주는 소리라. 그게 어떻게 들려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 한만하게 집에서 편하니까 그렇지, 안 그러면 그렇지 않은데요. 항상 돌이켜서 무엇인가? "내가 뭡니다"라고 한마디 하긴 해야 되는데, 뭔지 모르니 그걸 알아보려고 애쓰는게 당연한 거 아니야? (2019. 12. 29. 공주 학림사 오등선원 조실채 대원스님 소참법문) - 오등선원 카페 편집 여산거사 글을 다시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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