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불교에서는 사바세계라고 하는데,
인도말 '사바'를 한문으로 풀면 '감인'과 '회잡'이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참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감인세계요,
잡된 것이 뒤죽박죽 얽혀 있는 회잡의 세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사바세계에 태어난 이상에는
아무리 큰 복을 누릴지라도 잡된 일로 시달리기 마련이요,
인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름지기 이 세계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는 이들은
사바를 활동의 무대로 삼아 삶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늘 당부하고 있다.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아 연극 한바탕 멋있게 잘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아 한바탕 연극을 멋있게 하는 것인가?
춤추고 노래 부르고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면서
술 마시고 뛰어노는 것이 멋있게 사는 것인가?
아니다. 비극의 배역을 맡은 명배우는 마음속의 잡된 생각을 모두 비우고,
눈짓 몸짓 그 마음까지도 송두리째 슬픔이 되어 연기를 한다.
그저 우는 체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슬픔 그 자체가 되어 눈물을 짓는다.
그렇게 되면 관객들은 따라서 눈물을 흘리고 갈채를 보낸다.
사바에 사는 우리에게도 어디에서나 어느 때에나 배역이 주어진다.
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누구나 다 주연의 배역을 맡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 배역을 온몸으로 소화시킬 때 우리의 연극은 멋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우리의 연기는 배역을 이탈할 때가 많고,
이탈하는 그때부터 가슴 아프고 머리가 아프다며 아우성이다.
무엇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머리가 아픈가?
그 까닭이 매우 복잡한 듯하지만, 물질 아니면 사람때문이다.
물질과 사람 때문에 가슴 아프고, 머리 아프고,
심장과 간장 등에 열이 차는 병에 걸린다.
물질에 대한 애착, 사람에 대한 지나친 갈망,
사랑과 미움 때문에 병에 걸리는 것이다.
이 사바세계에 나올 때 머리 아프고 가슴 아프려고 나온 이가 있겠는가?
빈몸 빈손으로 옷까지 훨훨 벗고 나왔는데,
물질과 사람에 대한 애착과 망상으로 모든 근심 걱정을 만들어내고 괴로움을 받기 시작한다.
물질과 사람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진실대로 자기 정성대로 노력하기만 하면
세상은 될 만큼 되는데, 진실도 정성도 모두 놓아버리고 망상이라는 도둑놈에게 붙잡혀 있으니,
어떻게 근심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기껏 살아봐야 백 년도 못 하는 인생.
인생은 연극이요 이 세상은 연극무대가 아니더냐!
기왕 세상에 나왔으니 근심 걱정 내려놓고 연극하듯이 살아라.
좀 근심되고 걱정되는 일이 있더라도 다 털어버리고,
언제나 쾌활하고 낙관적인 기분으로 활기찬 생활을 해야 한다.
여태껏 생활해 온 모든 사고방식과 생활관념에 잘못이 있으면 텅 비워버려라.
물질과 사람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산 정신으로 활발하고 진실되게 살아가야 한다.
참 생명을 찾을 수 있는 산 정신으로,
이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아 연극 한바탕 멋있게 하기 바란다.
-경봉스님 일화집 '뭐가 그리 바쁘노' 서문. 효림출판사, 김현준 엮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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