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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보우국사 어록 중에서 "현릉이 마음의 요체를 청하다" - 농선 대원 선사 역저

선사선담

by 노하시원 2024. 6. 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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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에게는 본래 한 법도 없는데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답을 하지 않을 수 없고 국왕께서 거듭 청하시므로 말 아닌 말로써
마음 바탕을 바로 가리켜 말하겠습니다.
 
한 물건이 있으니, 밝고도 밝아 분명하고도 분명하여 거짓도 없고 사사로움도 없으며,
고요하여 움직인 적이 없으나 큰 신령스런 지혜가 있으며,
본래 생사도 없고 또한 분별도 없으며,
이름과 모양도 없고 또한 말로 설할 수 없습니다.
허공을 모두 삼키고 천지를 다 덮었으며
소리와 빛깔도 모두 덮은 큰 본체와 작용을 갖추었습니다.
그 본체를 말하면, 광대한 것을 모두 감싸서 밖이 없고,
미세한 것을 모두 거두어 안이 없습니다.
그 작용을 말하면, 부처님 세계 가는 티끌 수만큼의 지혜와 신통과
삼매와 변재가 있고, 숨었다 나타났다 종횡자재하며,
큰 신통과 변화가 있어서 비록 큰 성인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다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이 한 물건은 각각의 사람에게 항상 있으니,
발을 들거나 들지 않을 때와 경계에 부딪치고 인연을 만나는 곳에
반듯하고 분명하며, 분명하고 반듯하여 일마다 항상 밝고 물건마다
나타나 일체의 활동이 고요하면서 밝습니다.
방편으로 그것을 '마음'이라고 부르고, '도'라고 말하며,
'만법의 왕'이라고도 말하며 또한 '부처'라고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거닐거나 앉거나 눕거나 항상 그 가운데 있다.'라고 말씀하셨고,
요순은 또한 '진실로 그 중용을 잡아 함이 없이 천하를 크게 다스린다."고 하였습니다.
요순이 어찌 성인이 아니며, 부처와 조사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습니까?
다만 그 마음을 밝힌 분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 대대로 부처님들과 조사님들은 문자를 세우지 않고
언어를 세우지 않으며, 다만 마음으로 마음에 전할 뿐 다른 법이 따로 없었습니다.
만약 이 마음 밖에 따로 한 법이라도 있다고 하면 그것은 곧 마설이요
부처님의 말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름하여 이 마음이 한 범부가 망령되게 내는 분별하는 마음이 아니고,
바로 그 사람의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런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여 자기도 모르게 망령되이 행동하면
어수선하게 경계의 바람에 어지럽게 흔들리게 되고
육진 속에 매몰되어 자주 일어났다가 자주 사라졌다 하면서 허망하게 끝없는 생사의 
업과 고통을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나 조사님 같은 성인들은 숙세의 원력을 받들어 
세간에 출현하여 대비로써 사람의 마음이 본래 부처임을 바로 가리켜 마음이 부처임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마땅히 자기 부처를 관하셔야 합니다.
여러 가지 정사 가운데서도 틈틈이 전상에 바로 앉아 일체 선악을 조금도 생각하지 말고 몸과 마음을 
모두 놓아 버려서 금이나 나무로 만든 불상처럼 되면 얼어났다 사라졌다 하는 망령된 생각이 모두 멸하고
멸했다는 생각마저 멸하게 됩니다.
어느새 마음 바탕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고 의지하는 바도 없으며
몸과 마음이 홀연히 텅 비어 마치 태허에 기댄 듯할 것입니다.
여기에 밝고도 분명하고도 분명하며, 분명하고도 분명하여 밝고도 밝은 그것이 눈앞에 드러날 것입니다.
이 때에 자세히 살펴보면 부모가 날 낳기 이전의 본래면목을 곧바로 깨닫게 되리니,
마치 물을 마셔 본 사람만이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남에게 집어 보일 수도 없고 남에게 말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 신령한 광명이 하늘과 땅을 덮을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경계가 자연히 나타날 때에는 생사도 의심하지 않고
부처와 조사의 가르침도 의심하지 않게 되어 불조와 서로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대로부터의 부처님과 조사가 부자간에 서로 전해온 묘한 이치이니,
반드시 마음에 새기시어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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